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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Nov 18. 2019

서운하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

그가 매일 이 시간에 3층 건물을 통으로 사용하는 그 카페의 3층에 나타난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갔다. 일주일 전, 카운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3층으로 올라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양 옆을 짧게 쳐내고 적당히 기른 윗머리를 약한 펌으로 우아하게 부풀려낸 머리 스타일이 어딘지 낯익어서 무심코 계속 바라보며 생각하니 그날 출근길에 봤던 웹툰 주인공과 똑같은 스타일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서늘한 눈매와 다소 커 보이는 입까지 주인공과 똑같았다. 카운터로 걸어오던 그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잠시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제야 나는 너무 빤히 쳐다본 것 같아서 민망한 마음에 얼른 몸을 돌려 3층으로 향했다. 3층으로 올라와 눈에 보이는 아무 빈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생길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웹툰 앱을 실행해서 오늘 봤던 웹툰을 다시 보았다. 다시 봐도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난 카카오 톡으로 베프에게 ‘오늘의 오피스' 남주랑 똑같이 생긴 남자를 봤다고 말했고 베프는 진짜 레알이냐고 나도 보고 싶다고 어디서 본 거냐고 물었다. 그렇게 한창 킥킥대며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데 계단으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계단을 올라오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눈을 그에게 고정한 채로 친구에게 ‘올라온다!’라고 메시지를 보내는데 갑자기 그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는 바람에 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황급히 눈을 밑으로 내렸는데 그 찰나에 살짝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 뒤로 일주일 간 그는 늘 정해진 시간에 카페에 나타났다. 나 역시 그날 이후 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가 나타날 시간이 되면 난 자연스레 계단으로 눈길을 던졌고, 그 역시 올라올 때마다 내 쪽으로 눈길을 주며 웃는 것 같았다. 베프는 호들갑을 떨며 분명 너한테 관심이 있는 거라고, 조만간 니 번호 따러 올 거라고 말했고, 난 정색하며 아니라고, 오버 떨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실 언제 말을 걸어올까 기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비록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았지만 난 왠지 그와 아는 사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카페 3층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늘 보이던 시간에서 30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오다가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아님 누가 돌아가신 건가. 아니 그냥 휴가일 수도 있잖아. 베프는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날 달래려고 했지만 딱히 머리에 들어오진 않았다. 


왜 오늘은 오지 않는 걸까.


난 그렇게 1시간을 고스란히 그의 생각을 하며 보냈다. 정신 차리고 시계를 봤을 땐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 있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일어나서 카운터에 컵을 반납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해 문을 열고 나와 사무실을 향해 걸으면서 무심코 1층 쇼윈도를 들여다보았고, 그때 1층 창가 소파 좌석에 앉아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아놓고 열심히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 그를 보게 되었다. 문득 떠올려보니 카페 1층에 금일 3층 전기 배선 작업으로 콘센트 사용 불가라는 안내문이 적혀있던 게 기억났다.


지난 일주일 간 그는 나 같은 건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걸까. 


난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며 다시는 그를 의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베프에게 야 오늘 결국 오긴 왔더라. 근데 우연히 좀 가까이서 보게 됐는데 가까이서 보니깐 완전 딴판임. 그동안 조명빨이었는 듯. 여기 카페 원래 계단 쪽 조명 완전 밝게 해 놓거든. 그리고 알잖아. 나 원래 파마하는 남자들 완전 싫어하는 거. 베프가 알지 알지 라고 답해주었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칫솔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걸어가면서 이제 점심시간에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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