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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Jan 11. 2020

차 본 시계 - IWC 377709

IWC 파일럿 시계

손목시계 중에선 잠수부를 위한 다이버 시계나 비행기 조종사를 위한 파일럿 시계 같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시계들이 있다. 시계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전문가용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태생부터 전문가를 위한 도구라는 아우라를 뿜어내기 때문에 꼭 한 번쯤 차보고 싶었다.


파일럿 시계를 만드는 시계 브랜드는 정말 많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부터 신생 브랜드까지 다 알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IWC를 꼽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뛰어난 파일럿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나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만든 원조 브랜드, 혹은 가장 가성비가 좋은 브랜드는 아닐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한 파일럿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라면 IWC라고 생각한다.


앞면은 전형적인 크로노 그래프 파일럿 시계의 얼굴이다. 이런 디자인의 다이얼은  브랜드에서도 많이   있다. 차이라면 다이얼 오른쪽에 박혀 있는  브랜드 명이다. 그리고 사치품이  그렇듯,  브랜드 명이  가격 차이를 만든다.


뒷면에는 모든 빅 파일럿 워치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는 Junkers JU-52 비행기가 인그레이빙되어 있다. 사실 비행기에 큰 관심이 없어서 이 비행기가 얼마나 유명한 비행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파일럿 시계 뒤에 비행기를 인그레이빙한 건 아주 훌륭한 디자인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IWC 홈페이지 사진

모델명          : IW377709

직경         : 43mm

러그 투 러그 : 53.5mm

러그              : 21mm

두께              : 15mm

방수              : 6 ATM

무브먼트       : 79320 Calibre(오토매틱, 파워리저브 44시간, 진동수 4HZ)

기능              : 시분초, 날짜, 요일, 크로노그래프, 자성 방지 연철 케이스


IWC에선 시계가 자기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처리하는 방법으로 무브먼트를 연철 케이스로 감싸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연철은 탄소를 0~0.2% 함유한 쇠로 전도성과 투과성이 높은 강자성 소재다. 강자성 특성을 가진 연철이 시계 주변의 자기력선을 자신에게 유도해 무브먼트에 자기력선이 직접 닿지 않도록 막는다고 한다.


이 연철 케이스는 시계가 자성에 영향받는 걸 줄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케이스 특성상 시계 뒷부분을 투명하게 만들 수가 없어 무브먼트를 구경할 수 없고, 막을 수 있는 자기장(80,000 암페어, 혹은 1000 가우스 정도가 한계라고 한다)의 크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시계의 두께와 무게도 증가한다.

최근에는 무브먼트에서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부품 자체의 소재를 바꿔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보편화되고 있다. IWC의 엔트리급 모델들은 거의 대부분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시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최근에 자사 무브먼트를 열심히 개발해 엔트리 급인 IWC 스핏파이어에 적용한 걸 보면 언젠가 연철 이너 케이스를 빼고도 항자성을 갖춘 파일럿 시계를 출시해 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렇게 무브먼트를 발전시켜 항자성을 확보해서 연철 케이스를 빼더라도 뒷면의 시계 인그레이빙은 유지해 줬으면 좋겠다. 의미도 있고 멋도 있는 비행기 인그레이빙 장식 뒷면이, 투명하게 처리해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것 같다. 무브먼트는 다른 시계에서 구경해도 되니깐.


가격은 포스팅하는 2020년 1월 10일 기준 715만 원이다.  그런데 IWC는 중고 가격 방어를 잘 못하는 편이라서 중고 장터를 잘 찾아보면 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니 총알은 부족한데 IWC를 꼭 한 번 차보고 싶다면 flywatch나 중고나라, 타임포럼 같은 곳을 잘 살펴보길 바란다. IWC는 인기 브랜드라서 중고로 활발하게 유통되는 편이다. 조금만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면 최신 모델부터 이미 단종된 모델까지 거의 전 모델이 한 번씩은 중고 장터에 등장한다.

다이얼 색상이나 케이스 소재가 다른 형제 모델들

IWC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여러 형제 모델도 볼 수 있다. 물론 가장 기본인 검은 다이얼이 제일 멋지지만, 흰색이나 파란색 다이얼도 멋져 보이긴 한다. 다만 갈색이나 녹색 다이얼은 아직 조금 낯설다. 마지막 레드 골드 케이스에 파란색 다이얼은 색 조합이 멋지긴 한데 가격이 멋지지 않다.


스틸 브레이슬릿 모델들

가죽 스트랩 대신 스틸 브레이슬릿을 선택하면 가격이 125만 원 오른다. 브레이슬릿 값이 상당하다. 하지만 별도로 구입하면 더 비싸기 때문에 브레이슬릿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브레이슬릿 모델을 선택하는 게 좋다. 아주 가끔 중고 장터에 브레이슬릿만 파는 사람이 나타나긴 하는데 찾기도 힘들고 가격도 그다지 싸지 않다.

구성품을 모아 남긴 사진. 혹시 몰라 시리얼 번호는 가렸다.

나 역시 IWC의 파일럿 시계를 꼭 한 번쯤 차보고 싶어서 중고 장터를 전전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적당한 조건으로 당시 내가 차고 있던 파네라이의 PAM 510과 교환했다. 그게 재작년, 2018년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여름 3개월 정도 신나게 차다가 가을이 깊어갈 무렵, 다른 IWC로 다시 교환했다.


시계를 교환하는 자리에서 처음 시계를 봤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다. 첫인상이 정말 멋진 시계다. 별다른 꾸밈없는 원과 직선 구조로 만든 스틸 케이스는 아주 단단한 느낌을 줬고 검은색 바탕에 두껍게 그려진 흰색 숫자 인덱스는 어두운 하늘을 날아가면서도 쉽게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살면서 비행기를 조종할 일은 없을 테지만, 뭐 어차피 기계식 시계를 찬다는 것 자체가 감성적인 일이니깐.

 

시계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여름에 반 소매를 입어 훤히 드러난 손목에 적당히 큰 파일럿 시계를 차니 내가 봐도 멋져 보였다. 그리고 보통 ‘시계가 줄질을 잘 받는다’고 말하는데 이런저런 스트랩이 다 잘 어울려서 그날 기분에 따라 시계줄을 바꿔서 차고 다녔다.

녹색 잔디 위에서 녹색 나토 스트랩
하얀 배경 앞에서 짙은 갈색 엘리 줄


파일럿 시계답게 리벳 박힌 스트랩이 썩 잘 어울렸다. 다만, 지금 사진에 보이는 스트랩은 진짜 악어가죽이 아니라 악어가죽 모양을 낸 소가죽 스트랩이다. 독일의 리오스란 시계줄 회사에서 만든 스트랩인데 겉모습은 멋있었지만 착용감은 좋진 않았다. 뻣뻣한 느낌이 한참을 차고 다녀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아서 그래서 이 스트랩보단 착용감이 훨씬 좋은 녹색이나 검정 나토 스트랩으로 차고 다녔다.

 

다음에 또 IWC 파일럿을 산다면 그땐 진짜 악어가죽으로 만든 리벳 스트랩도 하나 사면 좋을 것 같다. 이 시계를 살 때 같이 받았던 엘리 스트랩을 사용해보면서 처음으로 진짜 악어가죽 스트랩을 차 봤는데 정말 착용감이 좋았다. 그리고 가죽 무늬도 소가죽으로 흉내 낸 악어가죽 무늬와는 차원이 달랐다. 흉내는 그저 흉내일 뿐이었다.

야광

시계의 야광 성능은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발린 도료의 성능 자체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괜찮았는데 모든 인덱스에 야광 도료가 발려있을 게 아니라 12시, 3시, 6시, 9시 방향과 시침, 분침에만 발려 있었다. 게다가 이전 시계가 워낙에 뛰어난 야광 성능으로 유명한 파네라이였던 탓에 더욱 아쉬웠다.


그래도 차는 내내 후회한 적 없는 멋진 시계였다. 시계에 별 관심 없는 아내가 먼저 멋있다고 말한 거의 유일한 시계가 바로 이 시계였다. 그래서 3개월이란 짧은 착용 기간에도 남긴 사진이 꽤 많다. 잘 나온 사진으로 몇 개 올려보았다.


맛있는 한우를 먹으러 가서
IWC 행사장에 놀러 가서


가족들과 근교로 나들이 가서

마음에 썩 들었는데도 3개월 만에 방출하게 된 이유는, 당시 주식 시장이 뭔가 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여유 자금을 확보하고 싶어서였다. 게다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서 긴소매를 입게 되었는데 이 모델이 꽤나 두꺼운 편이어서 소매에 잘 들어가지 않아 불편하기도 했다.


가족들과 근교로 나들이 가서


다음엔 기회가 된다면 크로노 그래프 기능이 없는 IWC 파일럿 시계를 차보고 싶다. 현재 기준으로 하나 꼽아보자면, 최근에 나온 스핏파이어 모델이 좋아 보인다. 적당한 크기에 자사 무브먼트가 들어가고 파워리저브가 긴 파일럿 시계다. 여러모로 디자인도 멋지면서 편하게 찰 수 있을 것 같다.

https://www.iwc.com/ko/watch-collections/pilot-watches/iw326803-pilot_s-watch-automatic-spitfire.html

  Water resistance 6 bar  

    Screw in crown  

    Height 10.8 mm  

    Diameter 39.0 mm  

    Stainless steel case  

    32110 Calibre  

    IWC-manufactured movement  

    Automatic, self-winding  

    72 hours Power Reserve  

    Frequency 28800.0 vph (4.0 hz)  

이 모델은 카키색 나토 스트랩도 꼭 함께 사야 한다. 카키 나토 스트랩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 참고로 2020년 1월 10일 기준으로 ₩5,950,000원이고, 만약 케이스를 브론즈로 선택하면 ₩6,650,000원으로 70만 원이 오른다. 나는 스틸 모델이 더 괜찮아 보이니 만약 산다면 7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언제 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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