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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Jan 24. 2021

차 본 시계 - 오메가 씨마스터 플래닛 오션

최초로 플래닛 오션이란 이름을 달고 출시됐던 뀨 PO

이 모델은 오메가에서 2005년에 ‘플래닛 오션(planet ocean)’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달아 출시했던 모델이다. 그 이후 내가 이 시계를 들이기 전까지 오메가는 플래닛 오션 라인을 두 번 정도 업데이트했다. 기존 모델이 단종되고 새 모델이 출시되면 보통 이전 모델은 앞에 구(old)를, 새로운 모델은 앞에 신(new)을 붙여 부른다. 그래서 이 모델은 구구 PO, 줄여서 뀨 PO라고 부른다. 


시계 크기


다이얼 크기: 42mm

러그 투 러그(lug to lug): 47mm

두께: 14.2mm

러그 너비: 20mm

파워리저브: 48 hrs


구매 동기


재작년이었던가. 신나게 잘 차고 다니던 노모스 아호이에 싫증이 났다. 원래 모든 물건이 그렇듯 한 번 싫증 나기 시작하면 갑자기 단점들이 크게 와 닿는다. 노모스 아호이의 가장 큰 단점은 러그가 너무 길다는 점이었다. 이건 아호이만의 특징은 아니다. 노모스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시계들은 러그가 길다. 다이얼은 다른 브랜드의 시계보다 작은 편인데 유독 러그가 길다. 아호이의 다이얼 크기는 40mm지만 러그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는 타 브랜드 44mm 시계와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독일 브랜드답게 손목 굵은 서양인 체형에 맞춘 건가. 아무튼 어느 순간 너무 길어서 불편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싫증이 나기 전에는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의 문제였던 것 같다.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어느 화창한 여름날

결국 몇 주 버티지 못하고 중고 시장에 내놓고 이리저리 교환 거래를 찾았다. 비인기 브랜드인 노모스에서도 비인기 라인인 아호이 답게 쉽게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잘 안 팔리니 마음은 더 빨리 식어버렸다. 얼른 내치고 다른 시계를 들이고 싶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온갖 데 다 찔러보다가 결국 대구에서 거래가 잡혔다. 그 길로 온 가족을 데리고 대구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는 목적이 무엇이든 여행이면 그저 좋아했기 때문에 걱정 없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가 국내 스탬핑 풀셋 아호이를 넘기고 브레슬릿은 물론 제치 줄도 없고 심지어 보증서도 없던 구구 PO를 받아왔다. 

코스코 스탬핑에 풀셋이었던 노모스 아호이


뀨 PO 판교 현백 오메가 매장에서 오버홀하는 데 55만 원


숱하게 시계 중고 거래를 해왔지만 보증서가 없는 시계를 받아온 건 처음이었다. 당시 그분이 시계를 두 개 들고 나오셨던 터라 선택지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브라이틀링 스틸 피시였는데 풀셋이었다. 그럼에도 단품인 구구 PO를 선택했던 이유는 착용감 때문이었다. 만나서 두 시계를 한 번씩 손목에 올려 봤는데 스틸 피시도 멋지긴 했지만 착용감이 구구 PO만큼 편하진 않았다. 크고 무거웠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대화를 나누며 거래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하니 표정과 언행이 남 등쳐먹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믿고 거래했다. 

다행히 시계는 진품이었다. 물론 내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품을 육안으로 판별할 능력은 없다. 그랬으면 거래할 때 이미 알았겠지. 진품 확인은 오메가 매장에서 해주었다. 몇 달 잘 차고 다녔는데 어느 날부턴가 시계가 눈에 띄게 느려지며 시간이 안 맞아서 판교 현백 오메가 매장에 오버홀을 맡겼다. 진품이 아니면 오버홀이 안된다고 하겠지, 그런데 정말 그러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며 맡겼는데 다행히 잘 진행됐다. 몇 주 뒤 다시 손목에 올린 시계는 그제야 오메가 명성에 걸맞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시간 오차를 보여주었다. 비록 오버홀 비용으로 55만 원이나 지불했지만 대신 추후 진품 보증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식 오메가 매장에서 발급한 오버홀 내역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줄질 놀이


뀨 PO는 다이얼 크기도 42mm로 크지 않으면서 러그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도 짧은 편이어서 두꺼운 다이버 시계 치고 착용감이 좋은 편이었다. 아래 사진의 스트랩은 중고로 거래하며 함께 받았던 스트랩인데 시계와 잘 어울리긴 했지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손목에 닿는 감촉도 별로였다. 그래서 몇 번 쓰다가 그냥 버렸다.

다행히 러그 너비가 애프터 마켓 제품이 많이 나오는 20mm여서 줄질 하기에 좋았다. 이런저런 시계들을 사고팔 때 함께 팔리지 않아 서랍에 남아있던 가죽 줄이나 나토 줄 중에서 20mm 줄들을 골라 하나씩 물려 차고 다녔다. 전형적인 다이버 시계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어느 줄이나 다 잘 어울렸다. 

그렇게 신나게 차고 다니다가 정품 스트랩에도 욕심이 나서 중고나라에서 오메가 정품 나토 스트랩도 구했다. 거의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중고 시장에서 11만 원 정도에 샀던 것 같다. 나토 치고 꽤 비싼 값이어서 돈값을 하려나 했는데 과연 시중에서 1~2만 원에 구할 수 있는 나토 스트랩과는 착용감이 달랐고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마치 자동차 안전벨트 같은 부드럽고 매끈한 질감이었다. 

다만 나토 길이가 좀 길어서 끝 부분을 다시 접어 넣어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긴팔을 입을 때 소매 안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도 불편했다. 

고심 끝에 다시 중고나라를 뒤져서 이번엔 정품 러버 스트랩과 디버클을 구했다. 다이버 시계 아니랄까 봐 다른 어떤 스트랩보다 잘 어울렸고 착용감도 일품이었다. 

그 후로 다시 팔 때까지 내내 러버 스트랩으로 차고 다녔다. 나름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땀이 묻으면 바로 닦아 주고 땀이 안 묻은 날도 수시로 물로 세척해줬다. 다이버 시계에 러버 스트랩이니 물로 세척하는 건 아주 수월했다. 물놀이할 때도 차고 들어갔다. 무려 600m에 달하는 방수 성능을 자랑하는 시계니 고작 1~2m 깊이의 물에 들어가서 첨벙거리며 노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차 봤던 모든 시계 중에서 가장 오래 싫증 나지 않았던 시계였다. 아주 만족하며 차고 다녔다. 


야광 놀이

근 10년이 넘은 시계인데 야광 능력도 아직 건재했다. 


싫증남


이 시계가 품고 있는 오메가의 2500 무브먼트는 파워리저브가 48시간이다. 주말에 시계를 풀어놓았다가 월요일 아침에 차려면 다시 시간을 맞춰줘야 했다. 그 행위가 요즘 들어 갑자기 너무 귀찮아졌다. 덩달아 시계의 파워리저브가 짧아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파워리저브 시간이 이보다 짧은 시계도 많다. IWC 마크 시리즈의 파워리저브는 42시간 밖에 안되고 그 유명한 롤렉스의 시계들도 이번에 리뉴얼되기 전엔 뀨 PO와 고만고만한 파워리저브였다. 또 생각해 보면 이보다 훨씬 짧은 파워리저브에다가 작동 방식이 수동이라 이틀에 한 번씩 무조건 직접 용두를 돌려 태엽을 감아줘야 했던 시계도 잘 차고 다녔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갑자기 파워리저브 시간이 짧아서 불편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 시계에 싫증 났다기보다는 시계를 차고 다닌 그 시기에 싫증이 난 게 그 이유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보내며 결국엔 내 삶을 지탱해 주던 중요한 요소 하나를 상실하고 말았다. 간신히 상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자꾸 그 시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계에 정이 떨어져 버렸다. 마음이 깃드는 물건은 이래서 안 좋다. 

그래서 이 매력적인 시계를 단숨에 보내버렸다. 단숨에 보내기 위해 가격도 확 깎아서 내놓았다. 얼마나 가격을 많이 깎았던지 중고나라에 글을 올린 지 2시간 만에 4명한테 연락이 왔다. 보내는 동시에 다음 시계를 알아봤고 자연스레 파워리저브 시간이 긴 시계들로 눈이 갔다. 예전에 차고 다니다 팔았던, 파워리저브 시간이 무려 8일에 달해 가만히 책상에 놔둬도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너끈히 버텨내던 pam 510 같은 시계. 과감히 돈을 투자해 IWC 포르투기즈 부엉이나 포르토피노 8 데이즈 수동 모델을 질러볼까도 고민했다.


그러다 아예 배터리로 가는 쿼츠 시계로 결정해 버렸다. 굳이 말하자면 파워리저브가 몇 년은 족히 되는 시계. 맷 데이먼이 제이슨 본 시절에 열심히 차고 나왔던 태그호이어 구... 구링크! 구를 몇 번 넣어야 되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시계다. 

덕분에 지금 수중에 기계식 시계가 하나도 없다. 왠지 조만간 하나 더 지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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