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nugeun Jan 31. 2021

여행의 이유, 독후감

떠나요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얼마 전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TV에 많이 나오신 분이라 이름과 얼굴은 물론 목소리까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분이 쓴 책을 읽어본 건 처음이었다. 

작가 소개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관심을 갖고 직접 구매한 책은 아니었다. 책은 아내가 사 왔다. 아내는 아무 때나 내키는 곳에서 조금씩 책을 읽는다. 어느 날은 안방에서, 또 어느 날은 거실에서. 애들 방에서 읽을 때도 있고 부엌 식탁에서 책을 펴기도 한다. 덕분에 이 책은 몇 주 정도 집 여기저기서 내 눈에 들어왔고 결국 호기심이 생겨 책장을 펴게 되었다.

여기저기 들고 다니다 보니 책이 좀... 구겨졌다

책에선 국내와 해외를 넘나드는 풍부한 여행 경험에 기반한 작가의 깊은 사유가 부드러운 문장으로 펼쳐진다.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시작한 얘기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를 아우른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국의 아이오와와 뉴욕, 한국 경남 통영과 전남 보성, 프랑스의 파리, 인도네시아의 발리, 폴란드의 바르샤바, 멕시코의 메리다, 미국의 브루클린을 관통한 후 부산으로 돌아와 끝을 맺는다. 중간에 상상의 여행을 떠나 오디세우스와 함께 키클롭스들이 사는 섬에도 다녀온다. 


이 책은 여행기는 아니다. 여행하면서 겪은 현지의 풍습이나 독특한 풍경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는다. 또한 여행지에서 볼만한 명소들이나 싸고 좋은 숙박 시설과 맛집을 소개하는 책도 아니다. 여행을 다루는 책에 으레 나오는 현지 사진 한 장 실려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내는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여행 병에 시달렸다. 물론 아내는 원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짐을 싸서 떠나는 사람이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근 1년 동안 집과 회사만 반복하고 있던 차에 여행이 주제인 책을 읽고 나서 여행병에 걸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그런데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침대에 하얗게 세탁된 시트가 빳빳하게 깔려 있는 호텔방이 그리워졌다. 모든 게 갖춰진 집에서 굳이 아무 기반도 없는 불편한 곳으로 떠나는, 어린애가 둘이나 딸려 있어서 알아볼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은 그 귀찮은 여행이 가고 싶어 졌다. 


김영하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 난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이유에 수긍했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이 챕터에서 작가는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라는 책에 나온 문구를 인용한다(저 책도 제목이 아주 매력적이라 다음 읽을 책 목록에 추가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한 마디로 난 달아나고 싶었던 것이다. 유난히 마음이 힘들었던 지난 한 해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슬픔이 계속 쌓여버린 물건들로부터, 내 슬픔이 배어있는 이 공간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엔 어떤 새로운 게 보고 싶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을 때 떠나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보고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바람직한 여행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챕터를 읽고 나니 지금 내 주위의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경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도 여행의 이유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 목적인 여행. 도약이 아니라 도망이 목적인 여행. 내 안에 가득 차고 넘쳐흐른 탓에 주위의 물건과 공간에까지 쌓여버린 감정을, 그 물건들과 잠시 떨어져 있는 행위로 비워내는 여행. 그것도 여행의 목적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오직 현재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지금의 나는 오직 현재를 사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의 나는 과거와 미래에 붙들려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는 누구나 아는 쉬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거를 바꿔 보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정작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했고,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니 미래가 바뀌지도  않았다.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난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 그 자체를 살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COVID-19 상황에서 나를 치유하겠다고 여행을 갈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책을 읽을 시간은 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난 김영하 작가라는 훌륭한 인도자를 따라 상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 알아두면 쓸모가 많을 몇 가지 통찰을 얻고 현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 챕터에서는 아래 내용도 마음에 와 닿았다. 그동안 막연하게라도 유학이나 이민을 생각했을 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느껴졌던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언어가 창작의 연료라면, 그 연료에는 등급이 있다. 나의 동료 작가들을 만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그들이 동시대 최고 수준의 언어로 독특한 화제들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하기 대문이다. 언어는 쉴 새 없이 변하고, 언어에 민감한 이들은 시시각각 낡아가는 언어들을 금세 감별한다. 모국어의 바다를 떠나면 이런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고 언어의 신선도에 덜 민감해진다. 작가는 우렁찬 목소리보다는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 없는 음성으로 낮게 읊조리는 소심한 목소리에 삶의 깊은 진실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런 웅얼거림을 잘 들으려면 발화자 가까이에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여행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한 번쯤 받아보는 것이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기억이 나는 거의 없다. 영감이라는 게 있다면 언제나 나의 모국어로, 주로 집에 누워 있을 때 왔다. 


나는 계속 한글로 글을 쓰고 싶다. 그것도 아주 잘 쓰고 싶다. 그런데 수십 년을 사용한 한글로도 아직 스스로 흡족할 만한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제 와서 다른 언어 생활권에 가서 다른 언어를 배우느라 한글을 소홀히 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는 거니까


독서록을 남기면서 검색하다가 이 이미지를 발견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는 거니까'와 관련된 얘기가 책에 좀 더 자세히 나온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 시제로 서술된다. 
...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아직 ‘진정한 여행의 의미’란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진정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여행의 의미가 꼭 한참 후에야 다가온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여행은 여행하는 그 시점에도 의미가 있고 다녀온 직후는 물론 떠나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참이 지난 후에 문득 내 삶에 와 닿은 여행은 있었다.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다녀왔던 유럽 배낭여행은 몇 년 뒤 직장 생활을 할 때 큰 힘이 되었고, 나와 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떠났던 설악산 가족 여행은 긴 시간이 흐른 뒤 동생이 남편과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나서야 소중하게 와 닿았다. 결혼 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여행도 언젠가 이렇게 와 닿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것만이 ‘진정한’ 여행의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생각이 된다는 작가의 말에는 적극 공감한다. 분명 당시에는 소중하다고 느낀 감정이나 생각이 치열한 삶 속에서 그냥 증발해버리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 여행이라면, 그게 비록 책 속으로 떠나는 상상의 여행일 지라도 내 언어로 옮겨 놓아야 내 생각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잊힌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난 이 책을 읽고 독서록을 남기면서 잠시 내 삶에서 일상을 부재시키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나마 내 의식을 익숙한 공간에서 떼어내 빳빳한 시트가 깔린 호텔방 침대에 눕혀 놓고 쉬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사람은 정신력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깐. 그저 코로나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어 얼른 마음뿐 아니라 몸도 함께하는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의 기쁨과 슬픔, 독후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