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과 대중과 민중의 차이는? 도덕과 윤리의 차이는?
이 책의 ‘들어가는 말’ 중 일부를 옮겨왔다.
이 책은 어감, 뉘앙스, 미묘한 뜻이 다른 비슷한 단어들의 의미를 좀 더 섬세하게 밝히고 싶은 소박한 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같은 뜻 다른 말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제대로 한번 톺아보고 싶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분명 거의 같은 뜻인데 바꿔 쓰면 문장의 느낌이 달라지며 어색해지는 단어들이 있다.왜 두 단어를 바꿔 쓰면 문장이 어색해지는 건지, 어떤 문장에는 찰떡이었던 단어가 비슷한 뜻의 다른 문장에는 왜 어울리지 않는 건지, 어느 정도 느낌이 오긴 했지만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이유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해도 어디서 어떻게 설명을 찾아봐야 할지 막막해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군중과 대중과 민중은 어떻게 다른 걸까? 도덕과 윤리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책의 내용을 담백하게 담아낸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458031
30년 넘게 사전을 만들어 오셨다는 저자는 거의 4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에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단어들을 앞 단어의 사전 순으로 90 묶음이나 모아 놓았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묶음을 몇 개 나열해 봤다.
간섭과 참견, 고독과 외로움, 군중과 대중과 민중, 도덕과 윤리, 복종과 순종과 굴종과 맹종, 사고와 사유와 사색, 사실과 진실, 속담과 격언과 명언, 신문과 심문, 아이러니와 역설, 예의와 예절과 예, 운명과 숙명, 일과 노동과 근로, 자존심과 자존감, 철학과 사상, 행복과 복, 헤엄과 수영과 유영
저자는 각 묶음 속 단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설명을 읽다보면 각 단어들이, 전달하는 의미의 강도가 다르거나,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이나 상황이 다르거나, 단어와 연관된 사람의 처지나 배경이 다르거나, 그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어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너무 뜻이 유사해서 그냥 대충 바꿔 사용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여러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각자의 고유한 쓰임 영역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유사한 다른 단어로 바꿨을 때 왜 문장이 어색해졌는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아래는 앞서 언급했던 ‘군중과 대중과 민중’의 차이를 책에서 설명한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군중과 대중과 민중
귀스타브 르봉과 같은 사회 심리학자에 따르면, 군중은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선동하는 사람의 암시에 따라 쉽게 감염되고 조종된다. 그들은 이른바 ‘군중 심리’에 의해 자제력을 잃고 쉽사리 부화뇌동하곤 한다. 또한 자신의 힘을 전체의 힘과 동일시하여 광장에 울리는 함성을 자신의 목소리로, 수천수만의 거대한 에너지를 자신의 힘으로 여기기도 한다. 난동, 폭력, 광기의 대명사인 훌리건은 군중의 일그러진 얼굴을 잘 보여 준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러한 군중의 특성을 교묘히 이용하여 나치즘 체제를 구축했다. 독일의 군중은 히틀러의 선동적인 연설에 뜨겁게 환호했고 그의 게르만 우월주의를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군중이 언제나 광란과 일탈만을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 대회 때의 길거리 응원 등은 군중이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발현할 수도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대중’은 군중과 달리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어떤 장소에 모여 있는 구체적 존재가 아니라, 사방에 흩어져 있는 불특정 다수로서 추상적 존재이다. 대중은 19세기 이후에 출현한 산업 사회의 산물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을 가리킨다. 도시화 현상으로 인해 익명화되고 원자화되어 서로 유대감을 가지기 어렵다. 인간 소외를 겪기 쉽고, 주체성 없이 남을 추종하는 타자 지향성을 띠기 쉽다. 보통 선거 제도의 도입으로 정치 참여의 길이 열렸으나 정치적 무관심에 빠지는 경우가 많고 선동 정치에 휘둘리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문화를 풍요롭게 향유하게 되었지만 저급하고 획일화된 문화를 좇는 경향이 있다. 대중은 군중과 다른 이유로 몰개성적, 무비판적 존재가 되기 쉽다. 군중은 집회가 해산되는 순간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지만, 대중은 대중문화 및 대중 사회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개성과 비판 의식을 견지하기가 쉽지 않다.
‘민중’은 지난 시대에는 단순히 다수의 백성이나 인민을 뜻하였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적 모순과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피지배집단(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의 뜻으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1970~1980년대 군부 독재 정권의 정치적 억압이 엄혹하던 시절, 민중은 모순과 갈등을 혁명적으로 해결하고자 거대한 세력으로 떨치고 일어났다. 부마 항쟁(1979)이나 518 민주화 운동(1980), 6월 민주 항쟁(1987) 등은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저항의 몸짓을 치열하게 보여 준 일대 사건이었다.
‘시민’은 좁게는 시에 거주하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사회학적으로는 국가의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모든 사람을 폭넓게 이르는 말이다.
아래는 도덕과 윤리의 차이를 설명한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도덕과 윤리
‘도덕’은 개인에게 초점이 있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양심에 토대를 둔 규범이 도덕이다. 물건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거나 정직해야 한다거나 예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도덕관념이나 태도는 가정과 학교, 문화와 습속에서 싹트며 개인의 마음속에 내면화한다. 내면화한 도덕관념은 어떤 행동을 하거나 무엇을 판단할 때 즉각적,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윤리’는 사회나 집단에 초점이 있다. 사회적, 집단적 행위에 대한 규범이나 준칙이 윤리이다. ‘기업 윤리, 방송 윤리, 윤리 강령’ 등에서 보듯 윤리는 어떤 사회 영역이나 직업 등에서 요구되는 보편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윤리도 도덕처럼 내면화할 수는 있으나 내면화의 정도는 훨씬 약하고 느슨하다. 하지만 위반했을 때 받는 처벌은 ‘도덕’보다 ‘윤리’가 더 엄격한다.(물론 가장 엄격한 것은 ‘법’이다.)
도덕과 윤리는 때로 충돌한다. 도덕적 행위와 윤리적 행위는 종종 서로 불화를 빚는다. 가령 군인은 전쟁터에서 도덕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적의 심장에 총탄을 맞히는 일은 군인으로서의 윤리적 의무이지만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의 내면에 강력하게 자리잡은 도덕관념이므로, 이 둘이 부딪칠 수 있다.
윤리는 도덕의 이론적 근거에 대한 물음과 탐구를 뜻하기도 한다. 어떤 행동이 왜 도덕적으로 선인지, 무엇이 공정성인지, 바른 행동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궁구하는 일이 윤리이다. 예컨대 ‘생명 윤리’는 생명 과학 기술 발달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문제, 예컨대 장기 이식, 연명 치료, 인공 수정 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또 그것이 야기하는 위험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서양 철학사에서 칸트와 니체의 도덕론은 서로 대립된 양상을 보인다. 칸트의 도덕은 이성에 토대를 둔 보편적 법칙이므로 정언명령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니체는 이런 유의 절대 도덕을 부정하였다. 그는 ‘도덕의 계보’에서 크리스트의 도덕을 비판하면서 그 도덕은 증오심에서 나온 위선 도덕이며 강자를 약자에게 종속시키는 ‘노예 도덕’이라고 규정했다. 그에 반해 ‘주인 도덕’은 도덕적 가치를 스스로 설정하고 자기 삶을 긍정하는 강자의 도덕이라고 주장하였다.
위 설명을 읽어보면 이 책이 어떤 느낌의 책인지 대략 파악할 수 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좀 더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언어에서 서로 다른 철자의 단어는 어떻게든 서로 다른 뜻이나 어감을 갖게 되는 걸까? 뜻은 물론 어감과 뉘앙스와 사용처까지 완전히 같은데 철자는 다른 두 단어가 있다면, 그건 명확한 의미 전달이라는 언어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되는 걸까? 그런 단어가 여러 개 있다면 하나만 남고 나머지는 점차 사장되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고, 왠지 그런 단어들을 발견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