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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Feb 04. 2022

동물농장, 독서록

어떻게 돼지들의 세상이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기록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관계가 없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던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우화 형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집필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당시 러시아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 뒤 공산주의 국가 소련으로 탈바꿈했지만, 이후 사회주의 혁명의 뜻을 저버리고 전체주의 독재 국가로 전락했다. 이런 소련을 비판하기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6187070

 

 제목과 내용만 대충 알고 있었는데 김태리의 리커버북을 들으며 내용을 조금 알게 되니 전체 내용이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599/clips/43


동물농장의 탄생 배경

 조지 오웰은 학교를 졸업한 뒤 버마(현 미얀마)에서 경찰로 일하지만 이내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경찰을 그만둔 뒤 작가의 길을 선택한다. 가난한 작가 생활을 거치며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의 밑바닥 인생을 몸소 체험한 조지 오웰은 ‘이론적으로 계획 사회에 찬동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산업 노동자들이 억압받고 무시당하는 것이 싫어서’ 친사회주의자가 된다. 이후 스페인 정부(좌파)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반군(우파) 사이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통일노동자당 민병대 소속으로 아내와 함께 스페인 정부 편에 서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다. 이 전쟁에서 조지 오웰은 스페인의 사회주의 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좌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지 오웰이 속해 있던 통일노동자당은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조지 오웰은 아내와 함께 가까스로 스페인을 빠져나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지 오웰은 정치적 성향이 짙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국가로 변모한 소련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친사회주의자였던 조지 오웰은 ‘1930년 이후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고 소련 신화에 환상을 품고 있어서 그 환상을 깨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아래는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전체주의> 선전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문명인들의 의견을 얼마나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죄 없는 사람들이 단지 신조가 다르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투옥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영국으로 돌아올 무렵 우리는 의식 있고 나름대로는 정확한 소식을 접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바 재판에 대해 언론이 보도하는 공모, 반역, 사보타주와 같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소련의 신화가 서구 사회주의 운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서유럽 사람들은 소비에트 정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1930년 이후 나는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배자들이 어떤 권력층보다도 더 확고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급 사회로 변모하는 분명한 조짐을 보았다.
 영국과 같은 나라의 노동자와 지식인 계급은 오늘날 소련이 1917년의 상황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소련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데도 있고(그들은 어딘가에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막연히 믿고 싶어 한다), 또 부분적으로는 공적 생활에서 상대적인 자유와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어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소련을 비판한 책이지만 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를 비판한 책이다. 조지 오웰은 서문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위해 사회주의의 근본 이념을 타락시키고 있는 소비에트의 신화를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영국 사회주의 운동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며 영국의 해외 정책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지도자들의 모든 행동은 우리가 그것을 모방하지만 않는다면 용서될 수 있다는 믿음만큼 사회주의의 근본 이념을 타락시키는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과거 10년 동안,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 소비에트 신화는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고 확신해 왔다.


 조지 오웰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고 이후 여러 사건을 거쳐 결국 스탈린 독재 체제로 접어든 소련과 그 주변국의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화시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화를 만들었다. 우화 형식이고 두껍지 않은 책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무엇을 비판하고자 쓴 책인지 단번에 알 수 있으며, 읽기 전후로 러시아 혁명에 관해서 조금 검색해 보거나 책과 관련된 해설을 읽으며 각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무엇을 은유한 것인지 알고 나면 재미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판 서문

 이 책의 서문은 조지 오웰이 1947년에 우크라이나판에 쓴 특별 서문이 실려있다. 서문은 아래와 같은 문단으로 끝이 난다.  


모든 사람들이 테헤란 회담이 소련과 서구 세계 사이의 최선의 관계를 이끌어 냈다고 생각하던 직후에 이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련과 서구 세계 사이에서 좋은 관계가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증명해 보여 주듯이 내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푸틴 독재 하의 러시아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전쟁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현재를 생각해 보면 이 문단의 내용이 더 깊이 와닿는다. 아무쪼록 전쟁 없이 갈등이 봉합되고 위기가 해결됐으면 좋겠다.


답답하고 우울한 소설이지만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

 아래는 사람이 지배하던 시절에 동물들에게 혁명의 꿈을 심어주었던 메이저 돼지(마르크스를 상징)의 말이다.


 동지 여러분, 이제 간밤에 꾼 나의 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자세히 들려줄 수는 없습니다만, 그것은 인간이 사라진 다음의 지상 세계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결국 메이저 돼지의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실현될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메이저 돼지가 내용을 자세히 들려줄 수 없었던 것도 어느 곳에서도 이상적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도 메이저 돼지의 이상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책을 읽으며 최근에 읽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가 생각났다. 그 책에서도 동물농장과 같은 사례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독재 체제 구축에 동참하며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겼다. 이런 측면에서 조지 오웰이 서문에 남긴 아래 얘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란 나라도 완전히 민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영국은 또한 커다란 계급적 차별이 있고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전쟁이 끝난 오늘날조차도) 부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수백 년 동안 내전이 없었고, 법률이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소식들과 통계 자료들이 믿을만하고, 사람들이 소수 의견을 내거나 그것을 지지해도 치명적 위험에 처하지 않는 국가이다.


 당시 영국 역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불평등과 차별이 심해지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법률을 공정하게 제정했고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소식과 통계 자료의 신뢰를 잃지 않았으며 소수 의견도 포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유지했기 때문에 적어도 소련처럼 되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념과 체제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든 이런 사항들의 중요성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조지 오웰의 소설은 이번에 읽은 동물 농장과 몇 년 전에 읽었던 1984, 이렇게 두 편 읽어보았는데 둘 다 흡인력이 대단해서 순식간에 읽었다. 읽는 내내 답답했고 결말도 우울했지만 우리가 함께 모여 살기 위해 지금과 같이 우리의 힘과 권리를 누군가에게 이양하는 체제를 유지한다면 꼭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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