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김강은 님의 클린 하이커스
명성이 자자해서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넷플릭스 다큐, ‘씨스피라시’와 ‘나의 문어 선생님’을 비로소 시청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후 회사에서 진행한 외부 인사 초청 강연에 ‘클린 하이커스’라는 단체의 리더, 김강은 님이 오셨다. 덕분에 마치 환경 특집과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예리한 통찰력과 매끄러운 문장으로 내 마음 한 구석에 쌓여 있던 의문과 감정을 저 깊은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 나도 아직 깨닫지 못했던 부분까지 파헤쳐 드러내 주는 순간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분 중 하나인데 씨스피라시가 바로 그런 쾌감을 안겨줬다. 해양 오염 실태라는 씨실에 해양 보호 단체의 민낯이라는 날실을 아주 잘 꿰매어 놓은 작품이다.
그동안 미디어가 우리에게 주로 전달하고 학습시켰던 해양 오염은 코에 빨대가 꽂혀 있거나 비닐을 해파리로 착각하고 먹고 있는 거북이, 잔인하게 사냥당하고 있는 고래, 검은 바다 위에서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쓴 채 앉아 있는 새 이미지로 대표할 수 있다.
이런 사진들은 직접 현장에 찾아가기는 힘들지만 해양 오염에 관심을 갖고 개선해 나가려는 많은 사람들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은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플라스틱을 소비하는 소비자와 일부 고래 사냥꾼, 그리고 가끔씩 뉴스를 도배하는 기름 유출 사건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사랑했던 씨스피라시 감독 역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처음에는 위와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감독은 개선되지 않은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 다시금 세상에 고발할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고 고래를 잡고 있다는 일본의 한 마을을 찾아간다. 그렇게 시작된 해양 생태계 파괴의 현장에서 감독은 널리 알려진 자극적인 이미지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한다.
핵심은, 실제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가장 큰 주범은 플라스틱 빨대나 고래잡이, 혹은 기름 유출 사고가 아니라 어업이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몇 가지 자료를 인용해 보겠다.
일본 타이지 마을(참고)에서 학살하는 돌고래 수보다 프랑스에서 부수어획으로 잡히는 돌고래 수가 10배가 넘는다(부수 어획: 목표로 삼은 어종을 잡기 위한 어업 과정에서 함께 잡힌 목표 어종이 아닌 생물들. 대부분 조업 과정에서 생을 마감하며 상품 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바다에 버려진다).
빨대로 죽는 거북이의 숫자는 연간 천 마리 정도인데 미국 한 곳에서만 연간 25만 마리의 거북이가 어업(어선에 포획, 혹은 어선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 때문에 죽는다.
바다에 버려지는 쓰레기의 46%가 어업 쓰레기이며, 빨대는 0.03%에 불과하다.
멕시코의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 유출 사고가 지금까지 발생한 가장 큰 유출 사고인데 당시 발생했던 몇 달간의 기름 유출로 죽은 동물의 수보다, 하루 어업으로 죽은 동물의 수가 더 많다. 기름 유출 덕분에 근처 어장의 조업이 중단되면서 해당 지역의 해양 생물은 오히려 더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감독은 의문을 품는다. 해양 오염을 막겠다는 사람들이 왜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는 가장 큰 원인인 어업에는 조용한 것인가. 왜 우리가 해양 생태계를 보전하려면 어업 활동과 어류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의문을 풀기 위해 환경 단체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한 감독은 자신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환경 단체들의 민낯을 마주한다.
예를 들어 참치 통조림에 붙이는, 조업 과정에서 돌고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돌고래 안전(dolphin safe) 라벨을 관리하는 지구섬 협회라는 해양 보호 단체는 실제로는 조업 과정을 제대로 감시하지도 않고 라벨을 발부하고 있었다. 그저 선장이 '나는 돌고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소'라고 말하면 라벨을 붙여주는 방식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단체 관계자는 '저 먼 바다에서 조업하는 수많은 배를 어떻게 일일이 모두 감시할 수 있겠는가'라고 답변한다. 그들은 '눈 가리고 아웅' 방식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캐릭터 스티커 판매 업체와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어업이 실제로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라벨을 발부하는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플라스틱 오염 연대라는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인터뷰에 응했던 단체 대표는 감독이 해양 생태계 파괴에서 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 어류 섭취를 줄여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질문하자 대답을 회피하고 황급히 인터뷰를 마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뜨고 만다. 인터뷰 후 단체 후원사를 살펴보던 감독은 돌고래 안전 라벨을 운영하는 단체인 지구섬 협회를 후원사 목록에서 발견했다.
이외에도 감독은 ‘지속 가능한 어업 협회/MSC(Marine Stewardship Council)’라는 단체의 창립 멤버로 해산물 유통 업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해산물 유통 업체가 창립 멤버인 환경 단체에서 어류 섭취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나올리는 만무했다.
이처럼 감독은 대규모 환경 보호 단체들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벌이고 있을 뿐이거나 혹은 해산물과 관련된 업체나 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업의 피해에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환경 보호라는 어젠다를 선점해 그저 돈을 벌고 있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어서 감독은 현재 바다에서 어업이 얼마나 파괴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 밝힌다.
매분 5백만 마리의 물고기가 잡히고 있다. 지상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남획과 밀렵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저인망 그물 같은 경우 점보제트기 13대가 들어갈 정도로 큰데 수많은 배들이 이런 그물로 해양 바닥을 쓸고 다니고 있다. 이런 조업 방식은 어류뿐 아니라 해양 식물까지 파괴한다.
해양 식물은 육지 식물의 20배가 넘는 탄소를 빨아들인다. 전 세계 탄소의 93%가 해양 식물과 산호에 저장돼 있다. 그중 1%만 소실돼도 자동차 9천7백만 대의 배출 가스와 맞먹는다.
현재 어업으로 1년에 사라지는 해양 숲의 넓이는 그린란드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터키, 이란, 태국, 호주를 합한 크기에 달한다.
그렇다면 양식업이 대안이 될 수는 없을까? 감독은 양식업 또한 지속 가능한 활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사례로 연어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 생선을 가공한 먹이 1.2kg이 필요하다거나 세계 맹그로브 숲의 38%가 새우 양식으로 파괴됐다는 자료를 제시한다.
이와 같이 어업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강력하게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이 문제가 자신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로 발전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법과 규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관련 법과 규제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단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고립된 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법과 규제로 제어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이었다. 실제로 몇몇 국가는 조업을 떠나는 배에 감시원을 파견하기도 했지만, 이 감시원들은 협박을 받거나 매수되거나 심지어 살해돼 수장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감독에게 문득 페로 제도에서 지속 가능한 고래잡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페로 제도로 떠난 감독은 그곳에서 거대한 살육 잔치를 마주하고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이후 고래잡이를 하는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인터뷰를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고래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고기의 양은 닭 2천 마리와 비슷하다. 또한 4명이서 연어를 먹으면 연어 두세 마리를 죽여야 한다. 나는 닭 2천 마리나 연어 여러 마리를 죽이느니 고래 한 마리를 죽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고래를 보호하겠다는 당신들은 고기를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는가.
이 인터뷰를 마친 뒤 감독은 자신의 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채식으로 전환하고 다른 사람들도 채식으로 전환하길 권유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와 함께 해산물로 섭취하는 대부분의 영양소는 다른 대체 식품으로 섭취할 수 있다는 자료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생선으로 섭취하는 대표적인 영양소인 DHA도 사실은 조류 세포가 생성한 것이며, 따라서 해조류를 직접 먹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선은 오메가 3 지방산을 생성하지 않는다. 조류 세포가 생성한다. 생선은 조류를 먹을 뿐이다. 조류가 생성한 DHA가 생선 살에 들어가는 것이다. DHA는 해조류를 직접 섭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지금껏 수많은 미디어에서 해양 생태계 문제를 다뤘지만 그 원흉으로 어업을 지목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 기사와 이 기사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이 다큐에서 언급한 자료들이 전부 신뢰할 만한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환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환경을 위해 싸우는 전사인 줄 알았던 환경 단체의 민낯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값진 '부수어획'이라고 할 수 있다.
씨스피라시를 보고 난 뒤 연이어 나의 문어 선생님을 봤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인간과 문어의 교감을 다룬 내용이다. 삶에 지친 감독이 바다에서 우연히 만난 문어와 교감을 나누며 치유되는 과정을 다뤘다.
내용 자체는 짧은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카메라에 담아낸 아름다우면서도 냉혹한 생존의 터전으로써의 바다는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영상 기술은 바로 이런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발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역동적인 바다였다.
뛰어난 영상미에 독특하면서 따뜻한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다큐가 완성됐다. 문어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굉장한 다큐다.
예전에 같은 팀원 분이 줍깅을 소개해 준 적이 있다. 조깅에 쓰레기 줍기를 접목한 신개념 ‘환경 보호’ ‘운동’이었다. 클린 하이커스는 그 무대가 산이다. 등산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환경과 운동에 관심이 많은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미대 출신 김강은 님의 미적 감각이 더해지면서 굉장히 매력적인 활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강연은 김강은 님이 어떻게 이런 활동을 하게 됐는지가 주 내용이었다. 등산을 시작한 계기부터 왜 그런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그리고 작게 시작한 그 활동이 현재 지상파 방송에서 소개하고 이렇게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강사로 초청할 정도의 활동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예전에 이슬아 작가님이 오셨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희망과 열정과 에너지가 묻어 나오는 강연이었다. 회사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이런 날것의 에너지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마치 아닌 것 같이 포장해도 결국 회사의 모든 활동은 수지타산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이번 강연은 업무 시간이 부족해서 들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참석했는데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두 다큐와 한 강연을 묶어 감상문을 쓰는 이유는 이들 모두 환경 단체라는 공통 키워드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문어 선생님이 환경 단체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다큐는 우리의 귀여운 문어가 살고 있는 다시마 숲을 지키기 위한 다이버 모임이 결성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형식으로 분류하면 두 다큐와 한 강연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환경 단체라는 키워드 관점에서는 씨스피라시 대 나의 문어 선생님 + 클린 하이커스로 나눌 수 있다.
씨스피라시는 어업의 문제점을 밝히는 다큐이기도 하지만 환경 단체의 민낯을 고발하는 다큐라고도 할 수 있다. 씨스피라시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씨스피라시에서 고발한 단체들은 선의를 갖고 활동에 참여하며 후원하는 사람들을 돈벌이 목적으로 악용한 아주 질이 나쁜 단체들이다. 이런 단체들은 바다에 대규모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저인망 어선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주체들만큼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지엽적인 문제로 돌려 진정으로 개선해야 할 점을 가리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시켜 막을 수 있는 환경 파괴를 놓치게 만들고, 환경 보호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보람을 앗아가 그들이 활동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무의미하게 소모해 버릴뿐더러, 진정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체들이 자신들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죄의식을 느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나의 문어 선생님에 나온 다이버 모임과 클린 하이커스는, 이 역시 내가 느낀 그들의 선의를 온전히 믿을 수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겠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느낀 환경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 태동한 아주 건전한 환경 단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문어 선생님의 감독은 자신을 치유해 준 문어와 그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다시마 숲을 지키는 다이버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고, 김강은 님 역시 힘든 시절에 자신을 위로해 주고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 준 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황금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산의 환경을 지키는 일에 쏟아붓고 있다.
어느 곳에나 항상 선악이 공존한다. 이것이 환경 문제를 환경을 지키려는 ‘선한’ 환경 단체와 이를 파괴하려는 ‘악한’ 무리들의 구도로만 보면 안 되는 이유다. 이는 비단 환경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곳곳에서 우리의 눈을 가리고 시선을 돌리려는 사람들의 얄팍한 속임수가 난무한다.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면 우리의 선의가 그들의 돈벌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럴 때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쓰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깝게도 한 정치 세력에서 이 표현을 자꾸 자기네 지지자들을 가리키는 용도로 써먹는 바람에 원래 의미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