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말 없는 사람 옆에는 꼭 말 많은 사람이

​연작소설 — 말이 사람을 데려오는 방식

by 산 사람


​윤재훈은 원래부터 말이 없었던 게 아니다. 정확히는, 말이 “없어진” 사람에 가까웠다. 사람이 말을 잃는 데는 보통 두 가지 지옥이 존재한다.


첫째, 아무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목소리가 공기 중에서 산화될 때. 둘째, 내 입에서 나간 말 한마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내 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망가뜨렸을 때.


​재훈은 이 두 지옥을 모두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입을 닫으면 최소한 더 망하지는 않았고, 침묵은 그가 가진 가장 확실하고도 저렴한 통계적 안전판이었다. 침묵은 배신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침묵은 공짜였다.


​구청 민원실 3번 창구. 오늘도 사람들은 번호표보다 먼저 감정을 한 움큼 뽑아 들고 들어왔다. 그들은 서류를 제출하러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하루가 얼마나 엉망인지 증명하러 오는 사람들 같았다. 재훈은 늘 그랬듯, 입술 근육에 “죄송합니다”를 미리 세팅해 놓고 앉았다. 사과는 문장이라기보다 결제 도장처럼 기계적으로 찍는 것이었고, 재훈은 그 도장을 찍어대느라 이미 영혼의 손목이 닳아 있었다. 그런데, 이 평온하고도 남루한 재훈의 침묵 수용소에 이상한 변수 하나가 무례하게 끼어들었다.


​“윤재훈.”


​재훈은 고개를 들었다. 민원실의 소음과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이토록 선명하고 정직하게 불리는 순간, 심장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담당자님’ 혹은 ‘여기요’로 불렀고, 가끔은 ‘야’나 ‘너’로 불렀다. ‘윤재훈’이라는 석 자는 그에게 너무 날 선 호칭이라 오히려 낯설었다. 이름이 불린다는 건, 누군가에게 존재를 들켰다는 뜻이니까.


​“너 오늘도 그 각도냐?”


​옆자리 2번 창구, 박미정이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원실의 찌든 공기 속에서 유독 혼자만 4K 고화질로 살아 있는 사람. 기름기가 아니라 생생한 활력이 번들거리는 사람. 아침부터 립스틱을 정성껏 바르고 온 걸 보면, 이 여자는 출근을 ‘당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한 판 ‘상대하러’ 온 쪽이었다.


​“각도요?”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너 민원인 볼 때 고개를 딱 45도 꺾잖아. 너 인간 안테나냐? 외계 신호 잡아? 아니면 목에 담 왔어? 그거 보는 사람 되게 피곤한 각도인 거 몰라?”


​재훈은 말없이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미정은 재훈의 침묵을 너그러이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포기라는 단어는 이 여자 사전에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보다 못한 가치였다.


​“야, 너 그거 알아? 고개 45도는 ‘나 지금 너랑 싸우기 싫다’가 아니라 ‘나 지금 너한테 항복했으니 마음대로 밟아라’로 보인다는 거. 그건 겸손이 아니라 방치야, 인마. 네가 너를 방치하는데 누가 너를 대접해 주겠냐?”


​재훈은 이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반박할 에너지를 이미 오전 내내 사과하는 데 다 써버린 탓도 있었다. 무엇보다 박미정은 틀린 말을 잘하지 않았다. 그게 재훈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박미정은 사실 정식 직원이 아니었다. 그녀의 명찰에는 ‘민원 안내 보조’라고 적혀 있었고, 계약 기간은 재훈보다 훨씬 짧았다. 말하자면 이 민원실에서 가장 바닥에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민원실에서 유일하게 “안 됩니다”와 “나중에 오세요”를 가장 당당하고 우아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는 계약직이라는 신분보다 '박미정'이라는 자존심이 더 상위 규정인 듯했다.


​“너 점심 뭐 먹냐?”


“편의점...”


“아, 또 제육? 너 그 제육이랑 전생에 원수였냐, 아니면 지독한 사랑에 빠진 거냐? 야, 그거 매일 먹는다고 니 인생 안 따뜻해져. 그냥 위장만 잠시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버리지. 인생은 온도가 아니라 농도라고, 이 답답아. 맹물 같은 인생에 제육 소스 좀 묻힌다고 고기가 되냐?”


​재훈은 그 비유에 아주 작게 웃을 뻔했다. 입꼬리가 움직이려는 걸 억지로 눌렀다. 웃음은 들키는 순간 일이 되고, 관계가 된다. 미정은 그 찰나의 흔들림을 귀신같이 놓치지 않았다.


​“어? 방금 입술 떨렸지? 너 웃을 줄도 아네? 너 사이보그인 줄 알았더니 사람 맞네! 야, 웃으니까 좀 낫다. 평소엔 무슨 압류당한 건물처럼 서늘하더니.”


​재훈은 “아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사이보그에서 진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더 깊은 침묵의 동굴 속으로 숨었다. 그때, 민원실 자동문이 거칠게 열렸다. 바람이 아니라 날 선 분노의 파편들이 먼저 쏟아져 들어왔다.


​“어딨어! 3번 담당자 어디야! 나와!”


​재훈의 몸이 기계적으로 반응했다. 척추는 팽팽하게 긴장했고, 목구멍에는 “죄송합니다”라는 탄환이 이미 장전되어 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45도로 꺾을 준비를 했다.


​“아, 저 ‘분노 조절 장애’ 아저씨 또 왔네.” 미정이 혀를 찼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성은 ‘개’ 씨고 이름은 ‘진상’이었나? 아니면 ‘무대포’ 씨였나?”


​재훈은 눈으로 “제발 조용히 좀 해요”라고 간곡히 신호를 보냈지만, 미정은 조용히 하는 법을 태어날 때 산부인과에 두고 온 사람 같았다.


​“야, 담당자!” 뱃살이 두둑한 중년 사내가 재훈의 창구로 돌진했다. “나 어제도 왔잖아! 내가 이거 서류 하나 때문에 연차까지 냈다고! 내가 무슨 죄지었어?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사람을 뺑뺑이 돌려! 어?”


​재훈은 자리에 앉은 채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고개를 45도로 기울였다. 상대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으면서도 경청한다는 착각을 주는, 비겁하지만 확실한 생존의 기하학.


​“어제 번거롭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


“죄송? 죄송하면 뭐가 달라져! 너네는 입만 열면 죄송하대. 죄송하면 내 하루 일당이 나와? 내 연차가 복구돼? 죄송하다는 말 말고 대안을 내놔, 대안을!”


​재훈은 답하지 못했다. 답하면 대화가 되고, 대화는 민원이 되며, 민원은 결국 징계나 사건이 된다. 재훈이 갈 길을 잃고 멈칫한 틈을, 박미정이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무례하고도 화려하게 밟고 들어왔다.


​“아저씨.”


사내의 시선이 미정에게 꽂혔다. 재훈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제발, 제발 그냥 넘어가 줘.


“아저씨가 지금 원하는 건 저 친구의 사과가 아니잖아요. 그쵸?”


“뭐? 넌 또 뭐야?”


“보상이잖아요. 아저씨가 연차 쓴 시간, 낭비한 감정, 그리고 이 더운 날 여기까지 다시 오게 만든 그 억울함. 그걸 누구한테든 돌려받고 싶은 거잖아요. 그쵸? 근데 사과만 받으니까 화가 안 풀리는 거잖아요. 사과로 배가 부르진 않으니까.”


​사내는 잠깐 말을 잃었다. 인간은 자신의 지저분한 속마음을 누군가 정제된 단어로 요약해 주면 일단정지하게 된다.


​“근데요, 아저씨. 이 친구가 아저씨 괴롭히려고 일부러 도장 틀린 게 아니잖아요. 규정이 야박하고 시스템이 멍청한 걸 아저씨도 알면서 왜 엄한 데 화풀이예요? 아저씨가 여기서 이 친구한테 소리 지르면요, 집에 갈 때 그 화 아저씨가 고스란히 다 싸 들고 가야 돼요. 그럼 오늘 저녁에 삼겹살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될걸? 그럼 아저씨만 손해지. 안 그래요?”


​사내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 감정이 갈 곳을 잃고 제자리에서 공회전할 때 나오는 색이었다. 재훈은 미정을 쳐다봤다. '이 여자는 대체 왜 저렇게 말이 많을까. 그리고 왜 저 무례한 말들이 은근히 가슴에 박힐까.'

​사내는 결국 책상을 치려던 손을 거두고 서류를 꾹 눌렀다. 분노의 압력이 빠져나간 자리엔 나이 든 사내의 고단함이 남았다.


“그럼... 나 어떻게 해. 나 또 오기 싫단 말이야. 이거 오늘 안 되면 나 회사에서 잘려.”


​그 순간, 재훈의 머릿속에서 ‘죄송합니다’가 아닌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아주 짧고 단단한 ‘해결책’이라는 이름의 문장. 평생을 입안에서만 굴리던 금기어였다.


​“도장... 다시 받으셔야 하고요. 담당 부서가 건너편 1층 민원지원팀인데, 제가 지금 바로 연락드려서 민원인님 가시면 줄 서지 않고 즉시 처리될 수 있게 조치해 드릴게요. 확인 도장만 찍으면 되는 거라 5분도 안 걸릴 겁니다.”


​재훈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명확했다. 사내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분노가 해결책이라는 목적지를 찾자 얼굴이 평온해졌다.


“그래... 그럼 네가 지금 연락해. 나 지금 바로 간다.”


​재훈은 전화기를 들었다. 수만 번 들었던 수화기가 오늘따라 천근만근 무거웠다. 전화 한 통이 대단한 용기라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침묵의 성벽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었던 재훈에게는 그것이 거대한 반란이었다. 미정은 뒤에서 입모양으로 과장되게 속삭였다.


‘봤지? 너도 입 있어! 밥만 먹으라고 있는 거 아니라고!’


​사내가 떠난 후, 재훈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민원실 천장이 아주 조금 높아진 것 같았다. 아니면 자신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거나. 미정이 다가와 팔꿈치로 그의 어깨를 쿡 찔렀다.


​“야, 방금 너 ‘해드릴게요’라고 했어. 너 원래 그런 능동태 안 쓰잖아. 넌 맨날 수동태잖아. 사과당하고, 욕먹고, 치이고. 근데 방금은 네가 상황을 리드하더라?

오~ 좀 멋있었어.”


재훈은 모니터를 보며 짐짓 모르는 척했다.


“안 했는데요. 그냥 안내한 건데.”


“했어, 인마. 기억해 둬. 말한다고 안 죽어. 오히려 말 안 하면 너 안에서 곰팡이 피고 썩어서 죽어. 아주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미정은 재훈을 보다가 갑자기 자신의 날 선 비밀 하나를 툭 던졌다.


“나도 옛날엔 너처럼 사과만 했어. 우리 집은 ‘미안해’가 화폐였거든. 엄마는 사과해야 아빠 매가 멈췄고, 나는 사과해야 그나마 밥상을 받을 수 있었지. 근데 어느 날 누가 그러더라. 사과는 너를 착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남들이 너를 쓰기 편한 물건으로 만들 뿐이라고. 그 말 듣고 결심했지. 앞으론 사과 대신 질문을 하고, 질문 대신 싸움을 하겠다고. 그래야 내가 ‘사람’으로 보이거든.”


​재훈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그 이야기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자, 오늘의 숙제. 퇴근하고 편의점 가서 레트로 캔커피 말고 다른 거 사. 좀 상큼한 거나, 아니면 지독하게 쓴 거나.”


“... 그건 왜요. 늘 마시던 게 제일 안전한데.”


“너 그거 3년째지? 매일 마시는 커피가 안정적이지만, 영혼 없는 권태기랑 연애 중이란 생각은 안 드냐. 사람은 배신하지만 커피는 배신 안 하니까 네가 거기 매달리는 거야. 근데 재훈아, 사람은 배신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재미도 주거든. 커피는 너한테 말을 안 걸잖아.”


​재훈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만든 비즈니스용 미소가 아니라, 뻔하지 않은 진짜 웃음이었다.


“야, 너 웃었지? 너 웃으니까 훨씬 사람 같다! 압류당한 건물에 전구 하나 켜진 거 같네!”


-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국밥 어때-


​재훈은 뜨거운 국물을 삼켰다. 그 열기가 가슴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면서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민원실 문을 다시 열고 들어올 때, 재훈은 유리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사과만 하던 입술이 오늘은 한 문장을 더 품고 있었다.


'​말 없는 사람 옆에는 꼭 말 많은 사람이 앉는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참견이, 가끔은 질식해 가는 사람의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재훈은 자리로 돌아와 앉아 고개를 40도쯤에서 멈췄다. 아주 조금 덜 져 보이는, 오직 자신만이 아는 미세한 저항의 각도였다.


​그날 밤, 옥상으로 향하는 재훈의 주머니에는 평소와 다른 '노란색 캔커피'가 들어 있었다. 인생은 온도가 아니라 농도라던 박미정의 말이, 오늘 밤 서은하의 목소리와 어떻게 섞일지 궁금해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