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참는 걸까

연작소설 — 말이 사람을 데려오는 방식

by 산 사람

[ 제육볶음과 국밥 사이의 주파수]


윤재훈은 점심시간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점심’이라는 단어가 강요하는 그 억지스러운 평화가 싫었다. 정오의 햇살은 공평하게 쏟아졌지만, 민원실의 소음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재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투명 인간처럼 증발해 버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재훈은 오늘도 구청 후문 편의점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문을 열기도 전에 묵직한 기척이 먼저 그의 등을 찔렀다.


​“야, 윤재훈.”


혼자만의 침묵을 무너뜨린 건 박미정이었다.


​“너 오늘도 그 편의점 제육이랑 1:1 팬미팅할 거야? 네 인생엔 장르가 제육 하나뿐이니?”


​“네. 제육이 성격이 제일 깔끔해서요. 뒤탈도 없고.”


​“깔끔하네, 비겁하네. 그 말은 사실 ‘부딪히기 귀찮아서’랑 ‘상처받기 무서워서’의 합성어잖아. 너는 어째 점심 메뉴 고를 때도 도망갈 궁리부터 하냐? 오늘은 그만 헤어져, 제육이랑.”


​미정은 재훈의 팔꿈치를 낚아채듯 돌려세웠다.


​“따라와. 오늘은 고기 말고 사람 좀 씹으러 가자. 어제 그 방송 때문에 나 밤잠 설쳤으니까.”


​재훈은 결국 편의점을 등지고 미정의 손에 끌려 국밥집으로 향했다. 재훈은 억지로 걷는 자신의 구두 끝을 내려다보았다. 선의를 거절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못내 쓰렸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자신을 억지로 세상 밖으로 끌어내 준 것에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국밥집은 전쟁터였다. 숟가락 부딪히는 쇳소리와 아저씨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 엉겨 붙어 있었다. 재훈은 좁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며 어깨를 최대한 움츠렸다. 소음이 짙을수록 그의 침묵은 투명하게 도드라졌고, 그는 그 투명함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들고 싶었다.


​“여기 앉아. 너 이런 데 오면 꼭 죄지은 사람처럼 굴더라?”


​미정은 창가 쪽 자리를 잡으며 턱을 괴었다.


​“너 이런 데 싫어하지? 자기 존재 증명하려고 목소리 키우는 사람들 틈바구니. 근데 재훈아, 어제 라디오 들었어? 그 서은하 아나운서 말이야.”


​재훈은 숟가락을 집으려다 손끝을 멈췄다.


​“…네. 들었습니다.”


​“들었지? 세상에, 난 그런 방송 처음 봤다니까. 살인자라는 사연이 올라왔을 때 나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어. 꼭 은하 씨 엿 먹이려고 판 짠 거 같던데.”


​뚝배기에서 김이 맹렬하게 올라왔다. 미정은 숟가락을 거칠게 휘저으며 재훈을 빤히 바라봤다.


​“근데 그 여자, 대본을 집어던진 것 같더라고. 아니, 아예 원고 자체가 없는 사람처럼 말하더라니까. 그 사연자한테 ‘부서져야,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할 때… 너도 느꼈지?”


​재훈은 말없이 국물 속의 고기를 건드렸다. 뜨거운 김이 안경알을 하얗게 덮었다.


​“예전엔 정답만 읽어주는 인공지능 같았는데… 어제는 같이 길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어요. 사연자랑 같이 숨을 고르고, 같이 울음을 삼키는 게… 헤드셋 너머로 다 들리더라고요.”


​“맞아! 바로 그거야.”


​미정이 무릎을 탁 쳤다. 주변 손님들이 쳐다봤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도 알지? 우리 민원실에서 맨날 보는 그 진상들. 소리 지르고 욕하는 인간들 속엔 사실 다 자기가 피해자라는 울분이 있잖아. 어제 사연자도 결국 자기 자식 인생 망쳤다는 죄책감에 괴물 가면 쓰고 들어온 건데, 서은하가 그 가면을 확 벗겨버린 거지.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죽인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할 때 나 야식 먹다 말고 울 뻔했다니까.”


​재훈은 안경을 벗어 닦았다. 뿌연 시야가 걷히자 미정의 눈동자가 보였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어제 방송이 남긴 온기가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네가 ‘틀렸습니다’라고 문자 보냈을 때 말이야. 나 사실 좀 놀랐어. 너처럼 365일 사과만 하는 놈이 그런 말을 다 하나 싶어서. 근데 어제 방송 보니까 알겠더라. 네가 낸 그 작은 균열 때문에 그 여자 원고에 구멍이 뚫린 거야. 그 구멍으로 진짜 사람 냄새가 들어오기 시작한 거고.”


​“근데 재훈아. 너는 왜 그렇게까지 참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재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재훈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낮게 읊조렸다.


​“참는 게… 익숙해져서요. 싸우려면 자존심이라는 근육을 써야 하는데, 저는 그 근육이 다 퇴화해 버린 것 같아요.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상황이 끝나니까, 그게 편해서요.”


​미정은 깍두기를 소리 내어 씹었다.


​“야, 윤재훈. 너 하루에 ‘괜찮아요’랑 ‘죄송합니다’를 몇 번이나 쓰는지 세어봤어? 그거 네가 네 인생한테 치는 바리케이드야. 근데 어제 그 방송 듣고도 계속 그렇게 살고 싶냐? 그 사연자처럼 다 터지고 나서야 ‘ 내가 내 아이의 꿈을 죽였네’ 하고 울 거야?”


​재훈은 답하지 못했다. 국밥집의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졌다. 예전 같으면 이 소음이 무서워 귀를 막았겠지만, 지금은 그 소음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절박한 생존 신호처럼 들렸다. 어제 은하가 그 함정 같은 사연을 '진실'로 바꿔놓았듯이.


​미정은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앞장서며 던진 말은 국밥의 열기보다 더 오랫동안 재훈의 귓가에 머물렀다.


​“말이라는 게 그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진 않아. 대신 ‘나 여기 살아있다’고 불을 밝히는 거지. 그게 네가 네 인생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첫 번째 대사가 되는 거야. 알았냐?”


​재훈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배는 아직 덜 찼지만, 명치끝이 묵직하고 뜨거웠다. 그건 소화되지 않은 국밥의 무게가 아니라, 평생 삼키기만 했던 말들이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감각이었다.

​구청 민원실로 돌아오는 길, 익숙한 회전문을 통과할 때마다 재훈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45도. 상대의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 상대의 분노가 정수리 위로 흘러가길 기다리는 가장 비겁하고도 안전한 각도.


​“야, 윤재훈. 오후엔 고개 몇 도 할 거야? 오늘도 45도 풀세팅이냐?”


​미정이 툭 던진 농담에 재훈은 멈춰 섰다. 로비의 유리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바닥만 보던 남자.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셔츠 깃을 매만지며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30도요.”


​“뭐?”


​“너무 숙이면 제가 안 보이고, 너무 안 숙이면 싸우자는 것 같아서요. 30도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적어도 상대방의 넥타이 매듭 정도는 볼 수 있는 각도니까요.”


​미정이 잠시 멍하니 재훈을 바라보다가, 이내 복도가 떠나가라 박장대소했다. 재훈은 처음으로 미정의 웃음소리가 시끄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소리가 자신의 얼어붙은 등허리를 녹여주는 것 같았다.

​오후 2시, 민원실의 공기는 여느 때처럼 매캐했다. 짜증 섞인 한숨과 종이 뭉치가 던져지는 소리. 그때, 재훈의 창구 앞에 붉게 상기된 얼굴의 한 남자가 들이닥쳤다.


​“이거 담당자 누구야! 서류가 왜 이 모양이야!”


​남자는 서류 뭉치를 재훈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예전 같으면 재훈은 즉시 45도로 고개를 꺾고 “죄송합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기계처럼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재훈의 고개는 30도에 멈춰 있었다.


​재훈은 남자의 넥타이 끝을,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 떨리는 남자의 턱을 보았다. 그리고 침을 한 번 삼킨 뒤, 아주 느리지만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죄송하다는 말씀보다, 어디가 불편하신지 먼저 듣고 싶습니다. 저도 틀릴 수 있으니까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순간, 남자의 고함이 멈췄다. 무조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는 ‘벽’을 기대했던 남자는, 자신을 똑바로(비록 30도지만) 응시하며 질문을 던지는 재훈의 반응에 당황한 듯했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침묵의 주파수가 민원 창구를 채웠다. 어제 라디오에서 은하와 사연자가 나누던 그 고요한 여백이 이곳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그날 밤, 재훈은 옥상에 올랐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손에 쥔 캔커피는 어제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자 서은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하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유창하지 않았다. 문장 사이사이에 긴 호흡이 섞였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헤매는 듯한 긴 침묵이 흘렀다. 예전의 완벽했던 은하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그 서툰 공백들.


​하지만 재훈에게는 그 공백이 세상 그 어떤 명언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었다. 그 공백은 바로 재훈 자신이 낸 ‘균열’이었고, 그 틈으로 비로소 사람의 숨결이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훈은 캔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밤하늘을 보았다. 내일은 어쩌면 15도쯤 더 고개를 들어도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참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세상은 여전히 무례하고 정답만을 강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재훈은 무작정 숨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진심을 내뱉기 위해 정중하게 숨을 고르는 사람, 비로소 ‘말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옥상 난간 위로 은하의 마지막 멘트가 들려왔다.


​“오늘 여러분의 오답은 무엇이었나요? 괜찮습니다. 그 오답이 오늘 당신을 살게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재훈은 작게 읊조렸다.


​“……고맙습니다.”


​틀렸다는 말 대신, 그가 세상에 내놓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