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가 나를 가르칠 때

[무게는 짐이 아니라, 방향이다]

by 산 사람


산길을 오르다 보면 가방이 조금씩 무거워질 때가 있다.

처음엔 몰랐지만, 그 무게가 바뀌는 순간은 늘 비슷했다.

숨이 조금 더 가빠지고, 발목이 흙 속에 잠시 머물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멈춘다.


멈추어야만

무게가 어디에 걸렸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도 그와 같았다.

중년이 되어 떠안게 된 많은 것들

돌봄, 상처, 책임, 고독, 침묵

그 모든 무게가 나를 지치게 했지만

그 무게가 없었다면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산길은 유난히 조용했다.

흙은 더 느리게 숨 쉬었고

바람은 지나가면서도 나를 스치지 않았다.

마치, 잠시 나의 내부로 걸어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문득, 오래전 적어두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무게는 나를 멈추게 하지만,

멈춤 속에서만 방향이 생긴다.”




# 중년의 고독은 고립이 아니라, 성찰의 형태다


나는 한동안

‘중년의 고독’이란 표현의 의미를 잘 몰랐다.

젊을 때의 고독은 흘러가던 물줄기가 멈춘 것 같았다.

그러나 중년의 고독은 달랐다.


사람이 줄어서 생긴 고독이 아니라

내면이 깊어져 생긴 고독이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기댈 수 없다는 사실,

그걸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길에서 내 안의 나에게 물었다.


“ 왜 중년의 고독은 더 깊게 느껴질까?”


잠시 말없이 걷다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고독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모양이 분명해지는 거예요.”


나는 그 생각에 한동안 멈춰 섰다.


고독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이 분명해진다는 말.

그 말은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고독의 형태〉

고독은, 윤곽이 생기는 것이다

젊은 날엔 알 수 없던
어떤 선과 결이
중년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본다.




#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산에서 살아오며

상처는 늘 두 가지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나는 나를 붙잡아두는 힘,

또 하나는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


젊은 날엔 상처가

나를 뒤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상처를 기억하고,

누군가의 말에 다시 흔들리고,

때때로 과거의 풍경 속에 잠겨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중년이 지나며

상처의 방향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속삭였다.


“상처는 왜 이렇게 오래갈까?”


내 안의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오래가는 건 상처가 아니라

그때의 마음이에요.

자신이 그때의 마음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 말은

내가 오래 붙잡아온 슬픔을

부드럽게 놓아주는 것 같았다.


나는 또 한 줄을 적었다.


〈상처의 방향〉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흐를 곳은 바뀔 수 있다

과거를 향하던 눈물이
어느 날엔
미래를 적셔주기도 한다

마음의 물줄기는
생각보다 더 쉽게 바뀐다




# 돌봄은 희생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기술’이다


중년의 삶에서 가장 큰 무게 중 하나는

아마도 ‘돌봄’이 아닐까.


가족을 돌보고,

약해진 부모를 돌보고,

조용히 나를 돌보는 일까지

돌봄은 점점 늘어나는 책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산속 바위에 앉아 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함께 있는 걸까?”


그 순간,


“돌봄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 옆에 오래 머무는 기술이에요.”


그 말은

내가 평생 배워오던 돌봄의 방식을

부드럽게 뒤집어놓았다.


〈머무는 일〉

돌봄은
무언가를 더 해주는 일이 아니라
덜 떠나는 일이다

누군가의 밤이 깊을 때
그 옆에서
같은 어둠을 바라보는 기술이다

함께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살아난다




# 무너진 날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하고 있다


산에서 오래 살다 보니

무너졌던 날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날들의 표정,

아무도 몰랐던 눈빛,

말하지 못했던 오래된 두려움.


나는 산길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무너진 날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더 단단히 서 있다는 사실을.


“힘들었던 날들이

왜 지금 와서야 고맙게 느껴질까?”


그러자 내 안의 내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날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 무너짐 때문에

지금의 균형이 생긴 거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전 나에게 말을 걸 듯.


〈무너진 날의 용도〉

무너진 날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아래에 기초가 생긴다

돌이 깔리고
흙이 눌리고
그 위에 내가 선다

버티는 건 오늘의 내가 아니라
어제 무너졌던 나다




# 회복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는 일이다


나는 한동안

“회복”이라는 단어를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속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다 보니

회복은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산에 사는 산 사람은 늘

흙이 부서지고,

나뭇가지가 떨어지고,

새로운 길이 생기며 산다.


회복도 그와 같았다.


나는 내 안의 나에게 말했다.


“회복은 왜 이렇게 느릴까?”


“느린 게 아니라

새로운 땅을 찾는 중이니까요.”


그 말은

멀리서 들리는 산새의 울음처럼

조용히 마음에 닿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글를 적었다.


〈옮겨가는 마음〉

회복은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다시 피는 일이다

뿌리가 새 흙을 찾듯
마음도 다른 자리를 찾는다

달라진 자리에
달라진 나로 선다

그것이 회복이다




# 무게가 나를 가르쳐준 것들


해가 지고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오늘 하루

내가 짊어졌던 무게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가르치고 있었는지

천천히 떠올렸다.


고독은 나를 고립시키지 않았고,

상처는 흐름을 바꿔주었고,

돌봄은 함께 머무는 기술이 되었고,

무너짐은 나를 지탱했고,

회복은 새로운 자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되었다.


나는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무게는 나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주 조용히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지금도


“ 삶은

더 깊고 더 단단한 자리로 향하고 있는지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