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면서 속 편한 날이 별반 없었다. 긴장 속에, 밭은 숨을 쉬어가며, 몸을 웅크린 채 지냈다. 새로운 과제의 긴장에는 날이 섰고, 가부의 결정에는 안달을 냈다. 가결된 과제에는 노심초사했고, 결과의 평가에는 예민했다. 요동치는 날들이 일상이었고, 흔들리는 일상에 이력이 났다. 그런 일상과 이력으로 생활을 건사했다.
노동하는 사람의 고단함에는 예외가 없었던 듯하다. 한두 사람만 고단했다면 노동절이 생겼을 까닭이 없다. 노동의 힘겨움은 누구에게나 공통이었고, 힘겨운 현실을 공유한 사람 사람들이 가졌던 온전한 삶과 마땅한 처우에 대한 생명 본능과 생존 욕망이 노동절의 본질이었던 듯하다.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절에 쉰다. 쉬면서 고단함과 고통을 달랜다.
노동절에 길을 나선다. 평창으로 갈 참이다. 평창은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60km 거리에 있다. 횡성까지 100km는 6번 국도를, 거기서부터 60km는 42번 국도를 탄다. 6번 국도 구간은 완만한 평지를 달리고, 42번 국도 구간은 깊고 높은 산중을 통과한다. 길지 않은 산중 구간을 지나는 동안에 전재, 문재, 여우재, 뱃재 네 개의 고개를 넘는다. 잇다은 고개들이 그대로 길이다.
평창은 태백산맥 서사면에 자리 잡은 분지다. 태백산맥 서쪽 산간 지대는 동쪽보다 지세가 덜 가파르다. 태백산맥의 동쪽에선 산들이 급경사를 이루면서 바다로 쏟아지듯 급하게 내리닫지만, 서쪽에서는 높은 산들이 첩첩이 겹쳐면서 넓게 퍼저나가 산들의 바다를 이룬다. 태백산맥의 마루에서 동쪽을 보면 시야가 거침없이 열려 장쾌함과 원대함이 가슴에 들어차지만, 서쪽 산중에 들어서면 겹겹의 산들 안에 들어앉은 분지와 산세를 따라 흐르는 물에 아늑하고 편안해진다.
방림은 아름다운 곳이다. 횡성 안흥에서 문재와 여우재를 넘으면 방림이다. 꽃산, 아름다운 숲이라는 이름에는 진실이 담겼다. 서강의 최상류 평창강과 계촌천이 방림 합천소에서 만나고, 합천소 앞뒤로는 넓은 강에 물이 깊고 그득하다. 넉넉한 물이 흐르는 강 뒤로는 편평하고 넓은 들에 집들이 마을을 이루었고, 마을을 마주한 강 건너 산에서는 바위 절벽이 검푸른 수면 위로 곧장 드리운다. 절벽에는 흰 꽃과 푸른 잎들이 드문드문하다.
뇌운계곡은 은밀하고 깊다. 왼쪽에서 흘러내리는 626미터 두리봉과 632미터 무동산의 줄기들, 오른쪽에서 뻗어 내려오는 1,350미터 백덕산, 990미터 수정산, 670미터 새귀양지산 줄기들이 만나서 심원한 계곡을 이룬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도로 번호가 없고, 길을 달리는 동안에는 인적도 차도 드물다. 42번 국도에서 이 길로 접어들지만, 계곡길을 찾아드는 지점에는 도로안내표지판이 없다.
뇌운계곡을 흐르는 평창강은 청정하다. 강은 계곡을 이룬 산줄기들 하나하나를 감돌면서 방림 합천소부터 평창까지 10여 킬로미터를 곡류한다. 산이 깊어 오랜 가뭄에도 물은 마르지 않았다. 바위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하게 반짝인다. 강 가장자리에는 흰모래밭과 하얀 조약돌밭이 넓다. 오랜 세월 물살을 견딘 크고 굳센 바위들이 드문드문 섰고, 문득 넓어진 강 가장자리에는 크고 높은 바위 절벽이 압도적 존재감으로 자리 잡았다. 강변의 넓은 터들에는 사람의 집들이 조용히 앉았다. 강가의 사람들은 ‘강가愛애플팜‘, ‘들꽃펜션’, ‘고추잠자리‘, ‘별빛나루’로 생업을 삼고 있다.
계촌은 서강과 평창강 최상류의 산촌이다. 깊고 아늑하고 고요하다. 뒤편에서는 1,000미터가 넘는 청태산, 대미산, 덕수산, 장미산이 마을을 감싸 안는다. 앞쪽으로는 마을을 감싼 산중에서 발원한 계촌천이 흐른다. 사방의 산과 하늘 아래 정적이 가득하다. 고요 속에 사람이 한 존재로 우주에 섞인다.
계촌천을 천천히 거슬러 오른다. 계곡이 부드러운 흰빛으로 가득하다. 물가에 선 키 큰 물푸레나무들 가지마다 우윳빛 흰꽃들이 넘쳐흐른다. 물푸레나무 계곡길을 달리는 동안 마음은 느긋하고 풍요로운 리듬으로 일렁인다. 마을에 계수나무가 많아서 桂村이 되었다는데, 계곡에 가득한 물푸레나무 때문에도 계촌이 된 듯하다*.
박경리 선생은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들이 울었다는데, 젊은이들이 울었다는 말을 들은 박경리선생은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라고 말했다. 박경리 선생은 ‘전쟁미망인이었고, 불행의 상징이었고, 가난했고, 애 데리고 부모 모시고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했고, 그러나 소망이 있기에, 불행에서 탈출하려고 ‘ 글을 썼다.**
박경리 선생이 말한 깊고 깊은 산골이 여기인가 싶다. 방림, 뇌운계곡, 계촌에는 각자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깃들어 산다. 자신의 생각과 지역의 재료로 특별한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 다정한 주인들이 창틀에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한 정성을 들이는 펜션, 부드럽고 맑은 맛에 냉이와 고추향이 어른거리는 메밀칼국수를 끓여내는 사람들, 전교생 30여 명의 초등학교에서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가르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여기에 있다. 꿈과 뜻을 따르면서 정갈하고 안온한 삶을 사는 것이 본질이고 순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산중이 회귀를 해볼 만한 땅인 듯하다.
세상에 전적으로 좋거나 전적으로 나쁜 것은 드물다. 노동도 때로는 고통이고 때로는 기쁨이다. 혼재하는 고통과 기쁨이라는 속성과 함께, 노동의 또 다른 본질은 요구와 부담이다. 노동은 요구하고, 요구한 것을 해내라는 부담을 지운다. 하나의 요구와 부담을 넘어서면, 대개는 더 큰 요구와 부담이 돌아온다. 노동의 고통도 요구와 부담에서 나오고, 노동의 기쁨도 요구와 부담을 넘어서는 데서 생겨난다.
요구와 부담을 본질로 한 노동은 일하는 사람에게 열정(Passion)을 촉구한다. 열정의 뉘앙스는 요구와 부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자발적 욕구다. 노동은 요구와 부담을 욕망하라고 권장하지만, 이 욕망이 고통과 비애도 포함한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는다. Passion은 Pati, Passio에서 나왔고, 이 말은 욕망, 기쁨, 쾌락과 고통, 슬픔, 죽음을 모두 뜻했다.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자비(Compassion)도 뿌리가 같다. 지금 일하는 사람들에게 Passion은 욕망의 뜻으로 통하고, 노동에는 자비의 자리가 없다. 고통과 슬픔은 각자의 몫이다.
노동의 요구와 부담은 만만치 않다. 감당해야 하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불안과 초조는 사람을 소모시킨다. 각박하게 만든다. 이력이 붙으면, 불안을 동반하는 법을 깨우치기도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초조함을 다루는 요령이 생기기도 하지만 없애기는 힘들다. 살아가는 한 일을 면할 길 없고, 일을 하는 한 일의 요구와 사람의 감당 사이에 긴장은 불가피하다. 내면의 불안과 외면의 평정 간 불화도 피할 길이 없다. 이 긴장과 불화의 크기만큼이 고통이고, 사람마다의 고통이 생애의 한 속성이다.
산중에 석양이 진다. 머리 위로 내리쬐던 빛이 산마루에 걸쳐 비스듬해진다. 어둠과 섞인 빛에 무게가 실려 석양빛이 낮게 깔린다. 내려앉은 석양은 사려 깊고 부드럽다. 적막과 충만, 아픔과 기쁨이 하나가 된다. 자아는 슬프고, 깊고, 편안해진다. 고통을 감당해 내는 것은 욕망과 분노가 아니라 슬픔인 것 같다. 고통과 슬픔이 각자의 몫이라면, 자비의 대상도 우선은 각자다.
이미 석양인데 집까지의 길은 멀다. 다행이다. 아직 가야 할 먼 길을 가지고 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슬픔을 누릴 수 있을 테니 고통도 견딜만할 듯하다. 슬픔을 누리는 길에 자비가 넘치면 좋겠다.
* 물푸레나무과의 목서를 계수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한양행홈페이지, www.yuhan.co.kr > health)
** 박경리, ”일 잘하는 사내“ 황호택, ”국민문학 ’토지‘ 작가 박경리 “행복했다면 문학을 껴안지 않았다”, 신동아, 2005.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