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에서 아침형 인간으로의 전환
20대 시절, 아니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족이었다. 잠 자는 시간이 아깝고, 밤거리의 어지러운 조명과 깔깔대는 심야 토크쇼를 사랑했다. 밤에 일찍 잠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나에게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대가 생겨났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늦은 밤'이 없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기를 쓰고 잠에 안 들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초저녁부터 '테레비'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는구나.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녁형 인간'으로 살 때는 지각이 일상이었다. 지각까지는 아니더라도 늘 뛰어가야 정시를 맞추곤 했다. 그렇게 쫓기듯 시작한 아침은 항상 정신없었고, '~해야만 해서' 시작한 수동적 아침은 늘 지옥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이른 밤에 잠들고 아침에 알람 없이도 저절로 눈 떠지는 일상이 지속되다 보니,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른 새벽, 아침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되는 경험이랄까. 시간이 나면 책도 몇 글자 읽고,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지하철을 타서 앉아 갈 수도 있고, 인적이 드문 길도 만끽하고(물론 너무 드물면 무섭겠지만), 사무실의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가 음악도 틀고 오늘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한 아침을 지나 점심 무렵이 되면, 무언가 엄청 알찬 하루를 이미 보낸 느낌이랄까.
'꼭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겠어'라는 것까진 아니지만, 아침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침 쪼렙'인 단계여서 좀 멀뚱멀뚱한 기분은 있다. 모처럼 만에 시간이 생겼는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일을 좀 더 일찍 시작한다는 정도? 외엔 이렇다 할 루틴은 없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평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적어 보기 시작한다.
- 건강. 20대 후반 여기저기 크게 앓은 후로는 늘 고민거리이긴 하다. 2년 이상 못하고 있는 요가를 아침 시간에 슬슬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 공부. 학창시절 공부는 웬만큼 한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건 공부라기보다는 시험점수 맞추기였다. 실전에서는 늘 취약체인 나에게 새로운 공부가 필요하다. 애매한 어학, 애매한 경력, 애매한 직무, 애매한 관심. 늘 애매한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는 것 중 하나를 좀 골라잡아 보자. 2020년 연말, 2021년 상반기는 '애매한 관심'이라는 분야에서부터 닻을 좀 깊게 내려 보고 싶다. 일명 '덕심'과 '덕질'이 필요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뭘 하고 싶은지도 뚜렷해지겠지.
그러기 위해 나와의 약속.
- 잠들기 전 스마트폰은 가급적 침실 밖에 두고 잠들기.
- 일찍 일어난 아침에는 좋아하는 요가 유튜브 채널의 도움을 받아 요가 수련하기. 전날의 과로로 늦은 아침이라 하더라도 최소 10분 이상은 스트레칭하기.
- 가급적 매일매일의 기록을 하기. 오늘 뭘 먹었는지, 뭐가 좋았는지, 관심이 간 인스타 채널은 무엇이었는지.
나와의 약속이라. 매년 초 세우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조금 남다르다. 주변의 이른 부고들을 맞아서일까. 내 삶이 무한한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일에 경각심을 갖게 된다. 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그 가운데서만큼은 충실히 한 번 살아보기.
아침 루틴은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조금씩 발견하는 지점들에서, 기록을 남겨보겠다.
올해 여름, 성산일출봉 앞에서. 이른 아침을 사랑하게 된 후로 발견하게 된 풍경 중 하나. 어둠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해가 떠오른다. 가끔 흐린 아침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