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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敎育

가르칠 교, 기를 육

by Om asatoma

교육을 百年之大計라고 표현하는 것을 진부하다고 생각했었다.

사회에서도, 만나는 어떤 사람들도, 정치에 관해서는 토론을 벌일지언정

교육에 관해서는 깊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교육을 걱정하는 기사나 칼럼도 보지 못했다.


교육이 보육의 영역으로 축소되고, 입시를 위한 학습으로 한정되는 동안

百年之大計가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2020년 8월의 광화문과 8월의 파업을 보면서 생각했다.


敎育.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다.

지식과 관습을, 변하지 않는 진실과 사회적으로 내려오는 전통을 가르친다.

가르칠 교자의 어원으로 보면 때려서라도 가르치는 것이다.

외부에서 알려주어야만 하는 것들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민주시민, 세계시민으로 길러내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길러낸다.

미래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인간으로 길러낸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근자의 장면들은

입시에 매달려 얼마나 얕은 교육을 해왔는지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학교를 학습기관으로 만든 것은 교사들이 아니라 사회의 요구였다.

진리와 가치를 탐구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사회는 학교에 요구하지 않았다.

어울려 살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인간으로 키워달라고 부모들은 학교에 요구하지 않았다.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는 사교육 시장과 비교하며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百年之大計를 소홀히 한 결과 사회가 방향성을 잃었다.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 개개인의 삶들도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잃어버리고

근근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 사회가 위태롭게 되고,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불가항력적 전염병을 맞은 국가위기상황에서도 구성원들이 한 곳을 바라볼 줄 모르고 있다.



리모델링 그 이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린스마트학교를 만든다고 한다.

미래의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자업계와 건축업계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할 방안이라고만 생각된다.


미래의 교육을 위해,

인문학의 부활을 이야기할 수 있는 품격 있는 교육부를 기대한다.


사회의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교육이다.

교육을 바로잡지 않고는 결코 사회가 바로 서지 못한다.

교육은 그 결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시험성적 같이 당장 수치로 드러나는 것을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학습의 결과는 단계별로 시험을 치루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즉시 보이지 않는다.

가르쳐서 길러낸 아이들이 사회 성원으로 역할을 하는 시점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그 아이들이 만든 사회의 체계 속에서 후세대가 살아가면서 분명히 드러난다.


해방 이후 교육의 결과가 지금에서야 눈에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인간을 길러낸 것이다. 아쉽게도, 어리석게도.

철학 없는 인간이 철학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

철학 없는 사회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존재하는 하루만 살기에 선택의 기준이 가치로운가에 있지 않다.

지금의 나의 배를 불릴 수 있는가, 지금의 나의 몸을 편안히 할 수 있는가에 있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가르쳐왔으며, 어떤 인간을 길러내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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