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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Jul 22. 2021

잡초

1.

농막 옆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멀리 강과 하늘을 바라볼 새도 없었다. 골이 보이지 않을 만치 잡초들 있었기 때문이다. 맨다리로 뛰어든 밭에서, 맨손으로 잡초를 뽑았다. 풀에 베이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팔과 다리에 칼이 스친 것 같은 상처는 아무렇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을 것이다. 피는 멎을 것이고 상처는 남겠지만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맨손에 잡히는 물집과 쓰라림은 참기가 어려웠다. 뜨거운 태양에 화상을 입은 듯이 살갗도 쓰라렸다. 이 정도면 그래도 우리 아버지 잡초로 뒤덮인 밭을 바라보며 한숨짓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밭에서 나왔다. 그것으로 한동안의 도리는 다 한 것으로 생각했다.


2.

그것은 자만이었다. 일주일 후엔가 장마철에 다시 찾은 우리 아버지 밭은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얼마 전에  말끔히 정리해 놓고 간 것 같은데 빗 속에서 잡초는 더 의기양양하게 푸르러 있었다.


이번에는 긴바지와 긴팔 작업복 점퍼로 갈아입고 장갑을 낀 채 밭으로 내려갔다. 바리바리 싸들고 가도 다 먹지 못하고 냉장실 안에서 썩어갈 푸성귀들임에도 그 곁을 파고 들어오는 잡초들을 필사적으로 뽑아냈다. 어찌 그래 잘 자라는지 무릎 높이만큼 자라난 잡초들도 많았다. 대책 없이 자라는 잡초를 보면서  퍼렇고 질긴 그 생명력이 그리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마른땅 보다 비가 내리는 땅일 때 더 잘 뽑힐 줄로만 알았다. 뿌리째 뽑으니 엉겨 나오는 흙무더기가 더 많았고, 그래서 더 무거웠다. 흙은 질퍽하고 내리는 비는 점점 뜨거워진다. 풀무더기 속에서 허리 숙여 잡초를 뽑아 재끼는데 웬만한 벌레, 지렁이는 아무렇지가 않다. 흙으로 만들어진 토인이 이제 겨우 일어서려고 풀을 움켜쥔 모양으로 그렇게 빗속에서 수시간을 보냈다. 호미질을 할 시간이 없어서 잘 뽑히지 않는 뿌리는 손가락으로 땅을 파서 뽑아냈다.


얼기설기 하나로 얽혀있는 잡초의 뿌리와 줄기를 들어내면서 소름이 끼쳤다. 지난번 분명히 잡초를 뽑은 자리인데 보란 듯이 더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그 수도 더 많아진 것이 마치 나를 향한 저항 같기도 했다. 나는 납작 엎드려 빌었다. 너희는 어디서든 잘 자라날 테니 제발 우리 아버지 밭에는 오지 말라고, 저 기슭으로 옮겨줄 테니 거기서 살고 여긴 오지 말라고, 잡초 덮인 밭을 바라보는 시름이라도 덜어드리고 싶다고 그 끈질긴 것들에게 빌었다.


발꼬락과 손톱 안으로 흙이 들어왔다. 처음부터 저들의 자리인 것처럼 깊숙한 곳에까지 박혀 씻어도 씻어지지 않았다. 손은 불어 있었다. 장갑을 끼고도 손바닥에 풀물이 들었다. 흙 때가 낀 손톱을 내려다보며 이거라도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 인가 했다.


근육이 뭉치는 것은 상관이 없다. 언젠가는 풀어질 것이다. 주먹이 쥐어지지 않아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다. 손가락이 굵어지고 손이 두꺼워지는 것도 괜찮다. 그 정도는 괜찮다. 시간이 흘러 괜찮아지기만 하면 그러면 괜찮다. 언젠가 괜찮아지기만 하면 괜찮다. 그러면 괜찮은데


3.

그러나 시간은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아버지의 젊음이, 기력이, 건강이 함께 흘러가버리는 것이 그것이 슬프다.


빗 속에서 질척이는 진흙 속에서 잡초를 뽑은 지 일주일이 흐른 날 다시 밭에 갔다. 온통 풀들로 뒤덮여있다. 고랑이고 이랑이고 모든 곳에 풀들이 높게 솟아 있었다. 이곳이 밭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손 쓸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만큼. 큰 절망이 덮쳐왔다.


이번에는 무릎을 넘어 허벅다리까지 올라오는 풀무더기가 생겼다. 살살 달래어 뽑아지던 풀들이 이젠 아주 억세어져서 두 손으로 힘껏 당겨도 뿌리가 뽑아지지 않는다. 지난번 미처 작업하지 못한 부분들은 이제 손쓸 수도 없이 거세어져 있었다. 뽑을 수 없어서 눕혔다. 비스듬히 눕히고 그 위에 뿌리째 뽑은 잡초들을 덮어 풀무덤을 만들었다. 더는 자랄 수 없도록, 우리 아버지 밭일하실 때 오가기 편하도록 뽑아지지 않는 키 큰 잡초들을 히고 풀무덤을 만들었다.


겨우 고랑 표시는 나게, 흙을 딛고 밭일할 수는 있게, 영 포기해버리지는 않을 딱 고만큼만 잡초를 뽑고 왔다.


걷어도 걷어도 거두어지지 않는 장막 같은 것이 뒤덮고 있다. 미약한 노력이 정말 미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상태는 더 심각해지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소용이 없음을 알지만 몸을 수고롭게 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위만 할 뿐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시간을 버티는 수밖에 없다.


우리한 통증이 있는 손이 주말쯤에는 나을 것이다. 낫지 않아도 밭에 가서 잡초를 뽑고 있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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