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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Jul 04. 2021

1999(3)

봄날의 캠퍼스는 활기찼다. 정문 바깥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정문 안쪽은 어떤 기대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교 안과 밖의 사람들의 발걸음 속도나 가벼운 정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봄이 끝나기도 전에 학내 게시판에 붙어있는 편입학원 광고가 보이면 그 앞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딱히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모의고사를 칠 때 지망학교로는 언제나 고대와 성대를 번갈아가며 썼지만 원서를 써야 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학교들은 오로지 전국의 국립대 중에서만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아 받아들였다. 원서를 쓰고, 합격통지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서울대가 아닌 이상 최선의 선택이라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전공도 내가 원하던 전공이었다.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가슴 뛰게 만든 분야이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이 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은 생각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전공에 대한 확고한 열망이 있었다. 결국 전공으로 대학원도 가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전공 관련 일을 할 예정이므로 전공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러나 학과의 동기들과 선배들 중에는 전공을 아끼는 이들이 없었다. 마지못해 들어온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전과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수님들도 열의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과의 분위기도 좋을 수가 없었다.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신나게 공부하고 싶었는데 의 내용도 깊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는 일이 입시 결과에 있어서는 크게 실패한 입시라는 사실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을 때였다. 정말 공부가 하고 싶었기에 대학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학내 게시판 편입 학원 광고 앞에 서서 학원비가 어떻게 될지, 편입을 하게 된다면 그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을지, 학비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며 있을 때, 그 아이가 말없이 옆에 다. 잘 모르는 타인들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는  관심 없을 광고지들을 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나는 편입 학원 광고 앞에 자주 멈췄고, 고개를 돌려보면 그 아이가 길 건너쯤 있었다.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졸업 후 석사과정은 다른 대학으로 지원했다. 물론, 국립대학이었고 장학금이 보장된 곳이었다. 그 아이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나의 시선이 어디에 멈춰있는지,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았을까.


우리는 그렇게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본 적도 없었고,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었다. 동향의 동문 동아리 소속이었고, 큰 모임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얼굴과 이름 정도를 알 뿐이었다.


눈에 띄기는 했다. 말쑥하게 큰 키에 웃는 모습이 서정적인 아이였다. 목소리기 크고 쾌활한 부류의 아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둡지도 않았다. 시선이 항상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고, 말은 조금 느렸고,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조금은 특별해 보였다는 점이다. 어떤 요소가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수줍은 듯 먼저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다. 다들 외치듯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학생들이 찾는 그렇고 그런 술집에서 그 아이가 다른 이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는 말을 멈추고 소음 사이 간간이 들려오는 그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 내가 먼저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다음에 언젠가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정도의, 딱 그만큼의 거리였다.


그래서 학보 게시판 앞에서 한걸음 떨어져 나란히 서게 되었을 때도 선뜻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안녕이라고 해야 할지,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할지도 몰라 고민하는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남학생들과 이야기 나누어볼 기회 없이 여고를 졸업한, 대학 새내기였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그 정도뿐이었다. 그이후로 여름이 왔고, 가을이 . 그리고 그 가을에 그가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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