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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Mar 20. 2024

제주 2: 포도뮤지엄-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포도뮤지엄

다듬어지지 않은 메모들 의뢰가 있기 전에는 다듬을 일이 없어 보이는 메모들

1. <바탕화면>

사진 여행과 출장 사이 어디쯤에 있는 일정을 준비하면서 꼭 해야만 했던 일이 사진의 정리였다 91.2기가의 여유공간을 확보해 준다는 문구를 의심의 눈으로 노려보다 결국 누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핸드폰은 한결 가벼워졌으나 사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첫째 아이가 다섯 살 때까지의 사진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진이 없어진 것이 마치 그 시간이 사라져 버린  같은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진이 사라졌다고 해서 추억이 사라졌는가 사라졌다 그 시간이 존재했음은 분명하지만 나의 뇌는 그 모든 시간을 기억할 수 없고 몸의 일부분에 남아 을지 모르겠으나 想할 수는 없다 追憶이므로 추억 역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잘못 찍힌 사진도 병적으로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두는 것 버리고 싶지 않고 놓고 싶지 않은 순간이 많은 것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고독감 나라도 붙잡고 있고자 하는 슬픈 어리석은 의지 어느 순간 남아있는 파일들도 모두 動하지 않게 된다면
내가 기억하지 않아도 기억해 줄 사람의 필요, 사람. 나를 기억해 줄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누구와 함께할 때 마음이 편한 이유도 여기에서


2. <밀실 1>

눈물이 터짐 억지로 참음 그러나 피부 아래로 눈물이 폭우같이 쏟아짐
닫힌 문들 낡은 문들 제각각의 낡은 문들끼리의 연결로 立된 하나의 間 문으로 인한 고립 아닌 고독의 요새를 보호하는 방패막 같은 느낌 그러나 저 문을 열 힘은 없는 마지막 남은 틈새까지도 닫게 될 間 먼지 쌓인 낡은 것들 보호해 주지 못하는 깨진 창문으로 들어올 매서운 바람 켜켜이 쌓인 고독 恨 닫힌 문의 열쇠가 있어도 열지 못할 열지 않을 몸 하나 눕힐 만큼의 공간 내 몸 반듯이 눕힐 만큼의 공간 그리고 그곳을 채우는 과거의 기억들 투명한 기억들 머리맡의 노트 한 권 來는 기록되어 지 않을 미래에 대한 것은 없을 한 권의 노트

존엄에 대한 생각


3.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

情 피사체에 대한 애정 그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과 관계없이 사진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피사체의 움직임 그 움직임이 시작되는 곳 움직임이 끝나는 곳 움직임이 끝나고 감정이 머무는 곳 감정이 없더라도 빛이 내려앉은 곳 용량이 가득할 정도의 사진은 아이들 사진인데 우리 엄마와 우리 아빠 사진은 누가 찍어주지..


4. <수공기억>

종로 3가
이야기
사람들이 찾는 것은 이야기 이야기를 찾아가는 사람들
자기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누군가로부터의 이야기
삶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 이야기가 많은 곳을 찾아가 살다 보니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졌는데 이제는 末이 전도되어 모여 살아도 서로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어짐
그러나 이야기에 대한 갈망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회 지역 축제 행사장과 스타벅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개인들의 이야기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개인들의 이야기가 없어질 때일 것이다 이야기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개인의 생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 개인 개인의 이야기를 귀히 여기는 사회에 최소한의 예절이 존재할 것 예절이 무너지면 이내 존엄마저도 위협을 받을 것이고 존엄이 무너진 시회는 類사회라 할 수 없을 것


5.  <기억이 어떤 형태를 이룰 때>

기억의 片 존재했으나 그러나 지금은 없는 남아 있는 흔적마저 왜곡된 것인 때로는 사실과 정 반대로 기억하기도 선후와 좌우와 상하가 전복되기도 한 고의이기도 하고 미고의 이기도 한 사고의 顚覆 이미 지나간 것은 의미가 있지 않은 나아가기를 머무르지 말고 나아가기를 아무리 붙잡으려 애써도 다시 在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를



6. <무제(패널룸)>

붙잡고 싶은 것과 現의 사이에서
신월동 훌라 오래된 노래책 마당의 평상과 수국과 장미와 작약과 무화과나무와 사과나무와 대추나무와 천리향과 호랑이발톱가시나무 앵두나무 무궁화 복숭아나무 배나무 수돗가 다락방 수돗가 근처에 저녁이 되면 피던 보라색 꽃 그리고 신월동 집 마당의 우물 같은 수영장 같은 우물에서의 물놀이 대문 마루를 차지하던 패브릭 소파와 전축 등나무 가구들
보드게임과 운동장에서의 축구와 술래잡기


7.  <텅 빈 환희의 끝 어디에나> <A.ZCHRL:하나>

나의 끝은 어떤 형태이며 어떤 소리일까
나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8. <재구성된 풍경 39>

김창열의 물방울과 이중섭의 게와 황소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집과 나무와 의자


9. <끝없는 선>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쓰고
특별한 의미 없는 글들을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같은 메모를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련과 집착과 소망 또는 갈망과... 집착, 집착
間과 那의 나에 대한 着 매달림
인상의 스케치 어휘를 나열하고 어쩌다 문장을 만들고 또 어쩌다 글을 쓰는 것 순간의 나를 붙잡기 위한 애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나를 껴안기 위해 뱉어내는 글자들 글자로 만들어내는 감정과 형상들 나에 대한 再創造

10. <FORGET ME NOT>

다 살지 않았으나 마치 다 산 사람처럼
去로부터 在까지
지나가버린 것으로부터 지금 드러나 있는 것까지
아직 드러내지 않은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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