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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Mar 20. 2024

제주 1: 제주도립미술관-색채의 여행자들,뒤퓌

240319 다듬지 않은 메모. 제주도립미술관.


1. 결
硬直 몸의 경직 사고의 경직 표정의 경직 감정의 경직
결이 있다는 것은 흘러간다는 것 흐름을 이룬다는 것
물결 꿈결 바람결 구름결 모랫결 강바닥의 결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사람들 틈에서 흘러가는 사람에게서만
그 사람의 결이 읽힌다
형태를 유지하면서 굳건한 자아의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에게서는 그 사람의 결을 읽을 수 없다
결, 흐름이 있다는 것은 살아서 움직인다는
감정의 흐름 사고의 흐름 온기의 흐름 꿈의 흐름 실패와 좌절과 성공과 절망과 희망의 흐름으로 이루는 결
결이 없다는 것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것
죽음
살아있으나 죽은 것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어디로도 흐르지 못하고 立되어 있는 상태
심연에도 흐르고 있는 무엇이 없고
외면에도 소통이 없는 상태
나는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2. 구름
아무에게도 잘못이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것이 어떠한 현상이고 흐름이라면
특정 개체도 사물도 인격도 아니라면
응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
언제고 흩어지고 말 것이라면
의도한 게 아니라면
그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결국 그것이 아닌 것이므로
구름이라고 이름 하지만 구름은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虛한 행위
마치 우울이나 슬픔 따위의 이름들처럼.


3. 착륙
中에서도
音이 주는 안정감과
어둠과 밝음의 교차가 주는 환상과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이것: 존재 또는 운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땅에 발을 딛게 될 순간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했을까
나는 그래서 땅을 딛고 무엇을 해 왔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4. 버스탑승 466번
클러치 작동불가로 멈춰 선 버스로부터 240번 버스로 환승


5. 제주도립미술관,뒤퓌
제주도립미술관 버스정류소에 내렸지만 미술관 건물은 보이지 않고
도로를 따라 걷다가 전혀 뭔가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급작스럽게 나타난 미술관 건물
 

-랑쥐거리의 아틀리에
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 제주로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빈 공간
사람이 머물다간 흔적이 있는 빈 공간
자신의 흔적이 놓여 있는 빈 공간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기다랗게 이어진 창과 창밖의 풍경
창밖의 풍경을 통해서 느껴지는 개인의 여유
이 방에서 저 방으로의 자유로운 이동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동이 가능하다는 자신감

열린 공간
노란 콘솔에 걸린 거울로 비치는 반대편의 풍경_하늘
반대쪽에도 외부와 통하는 창 또는 열린 문이 있음
외부와 소통 또는 출입이 가능 또는 자유로운 능력 또는 의지

작업 중인 작품이 놓인 이젤과
팔레트만 올려진 빈 이젤
마음먹은 것을 언제든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
이 방과 저 방 사이의 열린 문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다른 방의 모습
그 방에 걸린 거울에 비친 풍경을 통해 보이는 또 다른 공간
이곳에 머물러있지 않고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 또는 욕망

이쪽 방의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의 풍경과
저쪽 방에 걸린 거울을 통해 보이는 반대방향의 풍경
공간의 확장, 세계의 확장, 성정하는 자아
영역을 가리지 않음 갇혀있지 않음
계속해서 확장해 가는 영역

이쪽 방에 있는 전신 조각상
신체의 일부분이 아닌 전신상이 보여주는 자신감

이젤에 올려진 작업 중인 작품
그려진 공간보다 미완의 공간이 더 많음
앞으로 나아갈 세계가 더 많음
바다 항구 배 하늘과 바다의 경계 선 하나만 두고 하나로 칠해진 붓칠
경계 없음 무경계 무한
미완의 작품 속 배의 고동에서 느껴지는 역동성
정박해 있는 배가 아니라 움직이는 배
배가 움직이며 내는 물결 움직임의 흔적
그것을 바라보고 서있는 한 마리의 새
자신 안의 무엇을 향한 욕망 또는 열망
바다 너머의 넓은 세계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자 함

화물선이 주는 역동성 생산성에 대한 갈망 나아감

카펫 카페트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향해 놓여있는 카펫
흘러가고 있음
카펫이 놓인 방향과 문이 열린 방향의 일치
그러나 평행을 이루는 것은 아닌 데서 오는 불일치가 주는 신선함 도전 도발 자아 의지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경쾌함 재미
속도감과 움직임
자연스러운 시선의 이동을 유도
그러다 머문 곳은 저쪽 방
저쪽 방의 노란 콘솔
노란 콘솔 위 거울
거울에 비친 반대방향의 풍경
결국 시선이 멈추는 곳은 반대방향의 풍경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어떤 영역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늠할 수 있다는 것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도전 가능한 영역
도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미칠 것이라는 자신감


이쪽 방의 전체적인 대립구도
왼편의 멈추어 서있는, 움직이지 않는 조각상과
오른편의 움직이는 배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파랑
이미 잡힌 물고기 식탁 위에 놓인 접시 위에 올려진 물고기
열린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다시 갈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잔혹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푸른 바다 아닌 빛이 산란되어 푸른 바다 아닌
초록이 감도는 바다
물고기가 놓인 곳의 배경이 바다색을 띠게 되는
그러나 식탁 위에 놓인 망원경
망원경의 렌즈는 아직 파란 바다를 담고 있고
테이블 덮개는 바다의 물결 같은 움직임이 보이고

시간은 흘러가고

언젠가는 먹구름도 개일 것이며
바다색도 파랗게 돌아올 것이지만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바다
그래도 열려있는 창문
충분한 그리움 그리움 향수
놓지 못하는 추억 추억 포도 알갱이처럼 단단히 매달려 있는 추억 추억


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토록 탐스러운 꽃이라니!



태생 그리고 창
놓이는 곳과 향하는 통로


도치는 바다를 보다,

돌고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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