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 300

by Om asatoma

나중에 쓰일 곳이 있을까 주섬주섬 모아놓은 잡동사니처럼 언젠가 진짜 글 같은 글을 쓸 때 쓰일까 봐 순간순간을 낙서같이 메모같이 모으다 보니 글이 삼백 개가 되었는데 늘 하는 말이 그 말이 그 말이라 브런치에 온 지 수년인데 같은 말만 하는 걸 보니 거기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삶의 태도에 있어 자신감이 넘치고 전문 분야들 짱짱하게 글 쓰는 세련된 분들 보면 인스타 남의 집 잘 정리되어 티 없는 거실 훔쳐볼 때처럼 구질구질함이 대비되어서 차마 못 보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의지하면서 읽게 되는 글들이 있는데

주로 어르신들이 쓰신 글은 우연히 닿게 된 인연에 감사하며

사이버공간에서 받은 인복이다 생각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글의 호흡도 내용도 좋지만 어딘가 의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글을 읽고 나면 무조건 내편이 되어 주는 언제나 토닥여줄 것 같은 그런 편안함과 듬직함에 마음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어린 사람 투정 같은 글, 조금은 유치하고 다소 민망하기도 한 글을 봐주실 때 부끄럽기도 한데 읽었다는 표시를 남겨주시는 게 그것 또한 그럴 때가 있다고, 그냥 토닥여주시는 것 같아 품에 한 번 안긴 것 같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브런치 처음 왔을 때 따뜻하게 말씀 건네주신 내가 꿈꾸는 그곳 선생님이 떠나시고부터는 괜스레 마지막 글이 올라온 지 시간이 많이 흐른 분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브런치에서 유명한 작가님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가 이런 부끄러운 글을 많은 사람이 본다면 그 부끄러움의 크기가 더 커질 것 같아서 그냥 지금처럼 어쩌다 한 번 읽게 되는, 이 사람 아직도 이러고 있네 정도로만 생각되는 그런 자그마한 글방이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의 바람은 언젠가 '당신'이 나의 첫 글부터 마지막 글까지를 모두 읽어주는 언젠가가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당신'이 결국은 어느 신께로 귀결될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은 조금 더 칭얼거리겠습니다.


이미 발행한 글들도 혼자 여러 번 다시 읽으면서 조사 바꾸고 숨표 쉼표 바꾸고 글 쓴 당시의 느낌을 오래도록 기억하려 하고 있습니다. 안고 싶다라는 것이 너무 노골적인가 하여 알고 싶다고 고쳤다가 느낌이 살지 않는다며 다시 안고 싶다고 바꾸는 등의 일을 혼자서 심각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행복하기도 합니다.


혼자 기념합니다.

내용 없고 의미 없는 자기 위안의 글 300개 썼다고 혼자 기념합니다. 양이 중요한 건 아닌데 누구한테 내가 쓴 글이 이러하다 이 글 내가 썼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어디에 발표를 하거나 출간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이라 그냥 혼자서라도 기념합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한두 분은 읽어주실 것 같아서 감사의 인사도 함께 남깁니다. 누가 봐주면 좋겠다고 쓰는 일기장이기 때문에 일기장 표지를 여는 수고를 해주시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黃太황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