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해여자 Jun 15. 2024

도곡동에서 만난 사람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서

자주 떠오는 것은 아닌데 잊어지지 않아서

잊어야만 하는 사람 아니니 잊으려 애쓰지도 않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이 때때로 생각나는 것이

참 이상하기도 해서

가만 생각해 보았더니


한 번 만난 그날이

가을이었고 밤이었고

춥지는 않았지만 서늘하여 누구와든 몸 가까이 붙어있으면 좋겠다 싶은 가을밤이었고

나에게는 낯선 서울 거리였고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집으로 갈 길 멀다 싶은 곳이었고

다들 무리인 것 같은데 나 혼자 동떨어진 이방인이다 싶은 공간이었고

나를 아는 이 나를 불러줄 이 없는 곳에서

내 이름 부르며 다가와준 사람이라 반가웠고


나의 그것이

내가 긴 시간 정성과 애정으로 준비했던 3분이

맞는 건지 비슷하긴 한 건지 우스꽝스러운 건 아닌지

혼자 의문을 가지고 의심하고 자신 없었다고 대외적으로는 말하겠지만

안으로는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나만의 개성이 있고 소신 있고 주관 뚜렷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해냈다는 즐겼다는 마음으로 부풀어 있을 때

다가와서 나의 그것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고 격려해 준 사람이라서 고마웠기에 나의 그것을 온전히 귀 기울여준 단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 고마움이 깊었기에


전해받은 명함을 책상 서랍 열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서랍을 열 때마다 보면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매일을 생각하며 든든한 시간을 보내었다 그 후로 아무 안부 없이 수년을 명함 속 이름만 바라다보았다


가끔 이것이 그 사람에 대한 어떤 마음인지 혼동이 올 때도 있었지만 기적 같은 어제의 통화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꼭 바로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아도

내가 만나는 누구에게 그와 같이 따뜻하고 든든한 격려의 말을 건네어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불안해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누구에게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류애 담긴 애정 깃든 눈빛으로 응원의 말을 보내는 것으로 그에 대한 감사의 빚은 갚을 수 있겠다고


물론, 그가 기회를 준다면

그가 어떠한 수렁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때

스스로 작아지는 자신이 보이는 때가 오거나

'아무'에게 어떤 위로라도 받고 싶은 때가 오면

따뜻한 밥과 은근한 마음과 깊은 응원을 넘치게 주고 싶다


그는 여전히 이 안에서 내 손을 잡은 채로 살고 있으므로 그러하기에 스스로를 놓고 싶어 손이 느슨해질 때 이 손 꼭 잡아주는 존재로 있으므로

나의 이 은은한 마음이 무형으로 무취로 전해지 기라도 하면

그래서 더운 날 시원한 바람 같고 추운 날 따뜻한 바람 같기만 하다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할 이유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정도로만 그에게 가 닿기를.



남들 모르게 심어놓은 씨앗 같은

생명의 에너지가 약해져갈 때 싹 틔우는

굳이 꽃피우지 않아도 그 향내 그윽한,



매거진의 이전글 oh M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