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Jul 10. 2024
낮은 담 너머로 소박한 마당이 들여다 보이는
상추와 깻잎 같은 푸성귀와
앵두나무 사과나무 무화과 석류가 익어가고
장미와 수국과 모란 후리지아 국화 맨드라미
철 바뀔 때마다 꽃들이 피어나던
오가는 사람들과 담을 사이에 두고 눈 맞추며 인사 나눌 수 있는 집
갓 구운 깻잎전과 호박전 단내와
방아이파리 넣고 끓인 된장찌개 냄새가 담을 넘는 집
햇살이 머물다가 바람에 자리 내어주고
흙 마당 위로 빗물이 타닥이던 집
평생에 내가 먹은 밥은 신월동 그 집에서 먹은 것이 전부여서
떠돌다가 떠돌다가 그 집 대문 앞에 선 나를 본다
문자로만 알던 생의 허기라는 것
어쩌다 멋 내듯이 문장 속에서 한 두 번 써본 적도 있는 생의 허기라는 그것
나에게 남아있던 단 하나의 구멍이 막혀버린 날
간신히 새어들던 가느다란 빛줄기도 들지 않고
바람 소리조차 없어진 그날 이후
채워지지 않는 허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뼛 속이 텅 비어 몸이 바스락거리는 느낌
과거의 기억도 미래도 희망도 현재도 모두 사라져 버린 폐허에 남겨진 잔해처럼 지내던 어느 날
집을 짓자 내 집을 짓자
없는 집을 찾아 헤매지 말고 내 자리 아닌 곳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내가 집이 되자 하나의 문장을 안고 웅크린 침실에서 나와 바라본
비 그친 하늘을 기억하려 한다
소담한 집 지어
내가 살고
당신 오면 걸음 쉬어갈 수 있게 한 칸 방도 내어주고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그 집 말끔히 소제하며 새소리를 벗하려 한다
사라진 집은 마음에 묻고
새로이 지어 올려 내가 집이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