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m asatoma Jul 21. 2024

0720 서울, 뭉크전 '마주 앉아서'

뭉크전, in the digs

오래전

큰 비 내릴 거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선길에

잠시의 소강,

어리둥절할 만큼 맑은 하늘이 낯선 것처럼

그렇게 그가 나타났다


얼마 전

다시는 없을 아침 이전의 어둠의 시간에

이미 다 타버린 수풀 속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빛바랜 사진 속 외따로 선명하게 남은 일부분처럼

산길 속 우연히 만난 야생화처럼

그렇게 그가 나타났다



토요일 저녁시간

비 내리는 서울 역 앞 스타벅스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들이 모두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지

그 덕에 덩달아 힘주어, 가까이서 이야기하게 되는지

외부를 바라볼 때의 풍경이 어떠한지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때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

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삶 속에서 이 장면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할지

안다, 이제 다 안다




예술의 전당에서

남부터미널 괄호 열고 예술의 전당역 괄호 닫고 까지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키 큰 여자가 발목까지 오는 화이트 마 셔츠 쟈켓을 펄럭이며

한 손엔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달리다가

비가 쏟아져 다른 한 손에는 우산까지 들고 달리는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여름에도 차량용 에어컨을 지 않는 사람의 이마에 땀이 맺히고 그 땀이 얼굴을 타고 흐를 만큼 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지 약속시간에 늦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꼭 만나고 말리라는 굳은 의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뭉크전에 갔는데,

In the digs라는 작품을 보는 순간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글 번역의 제목은 '마주 앉아서'라니 그럴 듯도 하다

전시의 초반부에 이 작품이 나왔고,

제목을 보는 순간 오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든 것이다

이 작품이 없었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형식적인 안부를 건네기만 했을 거다



그 작품이 거기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그 둘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고

다른 표정으로 있었지만

조그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유리잔에 든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실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어떠한 이야기라도 나누었을 거라는 것,


그래서 뛰었다. 달렸다.


잠시 후의 우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뭉크전은 한 번 더 보는 걸로,

그도 한 번 더 보는 걸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