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Jul 27. 2024
내가 술을 참 좋아한다
철마다 찾는 주종이 다르고
바람이 건조한 정도에 따라 선호하는 주종이 다르다
소음 없는 곳에서 마시는 것이 좋고
나를 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과 마시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내가 술을 참 맛있게 먹고
술 마실 때의 내가 어느 때보다 예뻐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술의 맛을 오염시키는 안주 없이 오로지 술만 마시는 것이 좋다
특별한 주사는 없지만 할 듯 하지 않는 얄미운 버릇은 있다
그런데 내가 요즘 술을 못 마시겠다
긴 장마를 알리는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아가씨 뒤 보도화면에 비치는 흙탕물 장마쓰레기를 본 후로 술을 못 마시겠다
일부러 숨기고 감추는 것은 아니지만은
따로 챙기고 따로 돌보지 않아서 벽과 침대의 틈사이나 책장과 책장의 사이나
쓸어도 쓸리지 않는 거실의 모퉁이나 운전석 아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그대로 놓여있는
조각조각의 내가
빗물이 들어차 밖으로 나오게 되어 한데 흘러 엉켜있는 쓰레기들처럼
장마처럼 지루한 이 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양지로 흘러나와버릴까 봐
술을 마실 수가 없다
대신 포카리스웨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