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숲길 입구에서 만나 우리 걷자 사람들 소리 하나둘씩 사라지고 풀벌레소리만 들릴 때까지 걷다가 깊은 숲 속 우리 가만 앉아
나무를 보자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처럼 곁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나무들을 보자 한 번쯤 손 뻗다 제 팔 끊어버리고 그렇게 키가 커 가는 흔들릴 일 없어 보이는 나무들을 보다가 보다가 견고하고 단호한 저 나무들의 결벽에 서러워지면 고개 들어 하늘을 보자 아무도 몰래 흔들리고 있는 하늘의 바로 아래서 간구하는 저 잎들을 보자 툭툭 빗방울 떨어질 때 흠뻑 젖은 채 그 숲을 나오자 조용한 어둠이 밀려올 때
나무의 정령들이 등 떠밀어줄 때 너희들은 나무가 아니지 않냐며 다그쳐줄 때 손을 잡고 그 숲을 나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