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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Sep 12. 2024

오늘로써 두 번째가 되었다.

내가 여자로 인하여 운 것이 두 번이다. 오늘로써 두 번이 되었다.


유일한 친구가 시집간다고 했을 때, 정우상가 뒤에 있는 할리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울었더랬다. 훌륭한 시부모님과 좋은 남편을 만나 하는 아름다운 결혼이었다. 친구의 결혼 만으로는 슬플 이유가 없다.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되어서 그랬을까, 다른 사회에 속하게 되므로 어떤 이별이라고 생각했을까, 심각하고 진지하고 비장하게 편지지에 손글씨로 너의 앞날을 축복하노라고 꾹꾹 눌러썼던 그 시간이 생각난다. 아마도 그녀의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었는가를 혼자 곱씹으며 나온 눈물이었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남자 쪽으로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였을까 봐 아찔하긴 하다. 물론, 아직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내 생의 단비 같은 존재라 눈물이 마구 나기는 한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후, 오늘 나는 또 다른 한 여자로 인해 운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와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살면서 한두 번 인사를 나누었다가 어느 순간 그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는데 옆동으로 이사를 간 것임을 알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직 아이가 어릴 때라서 애들을 재우고 나서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언니 집에 놀러 가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와인을 하기도 했다. 언니가 해준 꿀자몽은 다른 곳에서 자몽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 동네술집에도 한 번 갔었고, 동네 찻집에도 한두 번쯤 갔다.


"피아노 언니"라고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데, 그녀는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나보다 한 살 많다. 지내는 모습들이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그래서 내가 맺는 어떤 관계보다 더 편안함을 주는 여인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그녀가 사는 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같은 동 같은 라인으로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된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고,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3-4년간 나의 근무처가 바뀌기도 했고, 직장에서의 실적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여서 오히려 그 이전보다 연락을 자주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함께 잠드는 날들도 많아지고 이러저러한 삶의 핍진함들이 누구를 마주할 수 없게 할 만큼 건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두 변명이다. 언니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고, 이번 일만 끝내면 연락해야지, 이번 프로젝트만 끝내고, 이번 장마가 끝나면, 이라며 계속 미루어왔다.

 

며칠 전 대형폐기물을 내놓는 곳에 언니 주소가 적힌 책장이 나와있어서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 다른 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그녀가 이미 이사를 간 이후였던 것이다. 날씨가 덥기는 하지만 나무들은 먼저 가을을 맞고 있는 시기여서 세상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동네인데 어딘가 텅 비어버린 느낌.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이러저러한 연유로 급히 이사를 가게 되었음을 전해 듣고, 짧은 안부를 나누었는데 통화를 맺는 인사를 나누면서 그만 눈물이 펑펑 쏟아져버리는 거다. 정말 펑. 펑. 급히 전화를 끊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떤 마음일까. 분명히 다시 보기는 할 텐데, 분명히 이어갈 인연이기는 한데 무엇이 그렇게 울게 했을까.


자주 연락하지 못한 미안함, 나의 무심함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렇게 팍팍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나의 삶에 대한 서러움, 서러움, 서러움. 우리는 충분히 더 좋았을 수 있는데, 충분히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요즘 시지프스의 형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큰 아쉬움이기는 하지만 후회는 없다. 정확히는 후회가 끼어들 틈이 없다.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행동의 패턴이 달라질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이 생을, 삶을 벌 받는 시간으로 규정해 버린 이상 그 어떤 선택지도 없기 때문에 후회를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언니의 이사가, 나의 이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떻게 저물어가는지를 알게 해 준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선택의 지점에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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