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와 메탈리카의 음악에 대하여 말을 하던 선 본 남자가 마음에 들어 애프터가 없는 그 남자에게 연락은 못 하고 그 남자의 친구가 한다는 사업장에도 가 보았고
카메라 감독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떠한지 궁금해 그 남자의 직장 로비에서 알짱거린 적도 있다. 꼭 그 남자 웃을 때 가선이 상큼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고.
이번에는 여든이 넘었을 어떤 남자의 생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그 문 앞까지 가보았다. 언제나처럼 무엇을 위한다거나, 어찌할 것을 생각하고 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지금 와 생각하니 수상한 사회이기에 상대가 어쩌면 위협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내지를 용기는 없으면서 주저하는 것으로부터는 조금 나아간 형태. 문이 열려 있었다면, 열린 문 사이로 그가 보였다면 멀리서 돌아섰을 거면서 문이 잠겨있어 오히려 안도하면서 문 가까이에 눈을 대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부는 어느 정도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동네 주민의 말로는 지난 밤 늦은 시간에는 불이 켜 있었다고 하니 가끔 찾으시기는 하는 듯해 렌터카 콘솔박스에 있는 블랙박스 사용 설명서의 간지를 찢어 쪽지를 남겼다. 좋은 작품들을 세상에 남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사실이기도 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노년에 듣고 싶은 말들을 쓴 것 같다.
떠나고 난 후에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인들이 많이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떠나기 전에 그 감사를, 작품에 대한 찬사를, 그의 삶에 대한 경외를, 삶과 작품을 통 틀어 예술인의 생에 대한 사랑을 사랑을 사랑을 충분히 표현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12월에 할 시낭송도 그러한 의미에서 존경하는 시인에 대한 헌정의 낭송이라고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 쪽지로 전해지는 것이 감사이기만 하면 좋겠다고, 단 하루의 기쁨이거나 쪽지를 펼쳐든 그 순간의 즐거움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실례를 범한 것은 아닌가 무례한 행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지않아 사죄의 말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의 글이 무척 산뜻하고 신선했다. 요즘 글 쓰는 사람들의 글보다 파격적이면서도 묘한 설득력이 있었고, 짙은 서정이 바탕이 되어 작가의 감정에 더 밀착될 수 있었다. 수수께끼 같은 그의 그림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처음 만난 남자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알아갈 때의 설렘 같은 것. 예술, 예술 작품에 대한, 예술인에 대한, 예술인의 삶에 대한 동경이 그 문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재능도 없고 용기도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탈에 대하여 용서를 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