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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Sep 17. 2024

春望

즐겨 찾는 찻집 평소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시간 그 적막감이 좋아서 찾았다. 폭염경보가 연이어 오고 한두 방울 여우비도 스치는 추석날 그 찻집 문 앞에 섰는데 문 바깥까지 사람들의 말소리가 높게 들려 잠시 도로변 가로수를 올려다보며 망설였다 잠시의 시간보다는 길게.





國破山河在 구절을 떠올리며 그 적막감을 생각하면서 왔으면서,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들 숨어들었는지, 모두가 고립되어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르는 어느 광장에 모여들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운전했으면서 막상 둘셋 사람들이 모여 앉아 소리 높여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낯설기도 하고 그 공간에 위치할 것을 생각하니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곳 외에는 달지 않은 발로나 라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없다며 큰 문을 밀었다.


한 도시가 쇠락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쓸쓸한지 마산에 갈 때마다 거리의 풍경을 보기가 힘들어 눈을 감고 싶어 진다. 마산수출자유지역 정문 앞의 분주함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창원에서 신촌을 지나 마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 만원을 이루던 도시근로자들의 땀냄새와 스킨로션 냄새를 기억한다. 사람들에 쓸려 다니던 마산 창동의 거리, 코아양과와 부림시장.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기는 하지만 도시가 기우는 것은, 개인의 일과는 별개로 거리를 두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전반적인 인구수 감소가 이유일 것이고, 산업구조의 변화가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지역사회 전문가들의 말을 마치 내 생각인 듯 읊어도 가슴이 아리지는 않는다.


단층아파트 5층의 샤시는 찬 바람을 막지 못했고, 한 여름 볕을 막아줄 커튼도 없었다. 시계가 멈춘 채 몇 달을 지났고, 화초는 말라갔다. 그것이 끝이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근근이 이어진 시간의 끝을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끝이 아니라는 것에 아직 마음도 몸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태다.


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노을 말고도 있을까. 지는 것들 중에 유일한 아름다움이 노을에 있어 사람들이 그렇게 석양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아닌가. 꽃이 지듯 청춘이 지고 기울어가는 모든 것들이 이지러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삶의 태반을 차지한다. 직시하는 시점을 유예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뿐 한 번 확인하고 나면 눈을 감아도 감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게 되고 마는 것이 생의 속성이라고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함부로 말해본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서럽기는커녕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불안을 주지 않아서이다. 저렇게 기울어가고 있는 달은 머지않아 곧 차게 될 것을 인류는 알고 있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은 어떤 것들이 쇠락해갈 때, 곧 상실되고 말 어떠한 것으로 인해 불안해질 때 달을 빌려온다. 달의 생명력과 한 개인의 삶에서 파생되는 것들의 생명력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세에 대한 믿음처럼 차면 기울게 되는 거라고 안심하고자 할 때 영측盈昃의 이치를 빌려온다.


기우는 시간이 길고 기울다가 다시 차오르는 변곡의 지점까지가 너무 멀어 어쩌면 이 생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그것이 '나'를 구성하는 전부가 아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각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들에, 그리고 다른 것들이 순조롭게 이어질 때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삶의 균형을 맞추어가라는 계언 정도로 여길 뿐이다.


이름 붙여지는 것들에 대한 강박이 있다. 명색, 명분, 명칭, 명성..

명절이기 때문에. 名節. 이 날에는 이러이러하게 지내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정해진 일정한 형태가 있는 날이어서 마음이 어지러움을 이렇게 횡설수설로 내놓는다.


첫 구절이 國破山河在로 시작되는 그 시의 제목(春望)이 더욱 간절히 다가오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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