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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view

성파스님 선예 특별전 : 개인적 감상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전시관 241008

by Om asatoma



작품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구도자의 작품에 담긴 기운을 직접 느끼고 싶었습니다.

선예 특별전 작품들을 여러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으로 보았지만

작품 앞에 섰을 때의 에너지를

전시의 공간을 채우는 에너지를

직접 느끼고 싶었습니다.


문외한이라 글을 다듬어도 의미 있는 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전시장에 선 채 성글게 메모한 것을 그대로 올립니다.





1. 태초太初

검은 옻칠 기둥 설치 작업은 우주의 시작을 상징하는 암흑물질을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강철보다 강한 옻칠의 접착력과 내구성, 그리고 옻칠을 여러 번 반복해서 칠할수록 맑고 투명한 본질이 드러나는 퇴칠 기법입니다. 여러 겹의 삼베를 붙이고 또 덧붙인 후, 계속해서 '칠하고 깎아내기'를 반복해야만 칠흑처럼 깊고 검은 기둥이 완성됩니다. 이 태초에서 성파는 '칠하고 깎아내기'라는 수천 년의 전통 공예 기법을 '채우고 비워내기'라는 색즉시공의 선 예술 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이하 회색 부분은 전시장에 제시되어 있는 작품설명)


검은 기둥에서 강한 양기가 느껴진다.
나무 기둥에 삼베를 덧입히는 작업은
내부에 있는 활동성을 감싸 재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대지를 뚫고 나오는 거대한 힘의 원천을 마른 삼베로 감싸고 감싸고 눈과 입과 귀를 봉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잠들지 않은 생명이 저 안에 있음을 안다.
다만 수행하고 있는 자로서 이 어둠을 감당할 뿐
굴복하지는 않았다.
억겁의 세월이 지나 이 칠흑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그 시간을 고행의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 두 작품은 좌측의 옻칠작품의 제목이 '空' 우측의 한지 작품이 '滿'이라고 되어 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두 작품의 제목이 바뀌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을 空이라 함은 空-滿- 空-滿- 空-滿.... 의 무한한 반복의 끝에 종국에는 空에 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일지도 모르겠다.


2. 유동流動

옻칠의 특성 중 하나는 물과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바람이 흐르고나 먼지 같은 미세한 입자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모습, 또는 에너지와 기운의 흐름을 색으로 명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태극이 동정 이후 음과 양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물과 맞서 이기는 자가 있는가
물로부터 생명을 허락받음에 물이 아무리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하나 모든 생명은 그 물아래 엎드리는 것이니 물에 씻기지 않고 물과 섞이지 않고 물을 씻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옻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인간을 두렵게 한다.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 가장 두려운 것은 시간이다.
두려움을 없애고자 시간의 흐름을 읽으려 애쓴다.
계절의 변화, 해 그림자의 변화..
시계침으로 분절적으로 하루의 시간을 나누어 놓고는 아마도 매우 흡족해하고 평안을 얻었으리.

바람도 에너지도 이곳으로부터 저곳으로 흘러가는 것들의 배경에는 시간이 있다. 바람의 흔적을, 에너지의 흐름을, 잡아 가시적인 영역으로 끌어온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 실은 저리도 찬란한 것이었나니
흘러가는 모든 것들에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으되
그대, 눈물을 거두려 애쓰지 말고
눈물 또한 흘러가는 곳을 보라
그대에게 멈추어 있는 것 같은 시간도 실은 흐르고 있으니
모든 순간이, 모든, 순간이
하나의 결을 이루어 빛나는 무늬를 만들게 될 것이므로
지금의 당신을 아끼라

당신의 삶을 떠보면 저와 같이 찬란하리.


3. 꿈夢

선장 성파의 직관과 무의식의 세계는 초현실적인 인간, 동물, 꽃뿐만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형상으로도 잘 드러납니다. 특히 색칠을 반복할수록 본래의 바탕이 점점 더 투명하게 나타나고, 화면이 밝아지는 퇴칠 기법과 대여섯 달이 지나야 꽃이 피듯 완성되는 옻칠의 활성은 성파의 본성 경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성파의 인성과 옻칠의 물성, 그리고 칠예기법이 공사상으로 하나가 되는 이 지점에서 초월적인 정신의 경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의 특정 부분 차크라가 막혀있는 것인지 이 섹션의 작품에 대해서는 차마 그리고 감히 어떤 언급도 할 수가 없다.

종정이시라 특별한 용기나 결단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자연스럽게 펼쳐주시는 작품들이겠지만 사람들이 알면서 언급을 안 하는 건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
지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다만 매우 강한 생명에너지가 느껴졌던 전시공간이라고만 언급하겠다. 굉장한 에너지로 가득 찼던 공간, 그리고 작품들.

작품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쩌면 전시공간을 온통 붉은색으로 해야만 했던 이유일지도.
작품에서 나온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붉은 빛밖에 없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4. 조물 造物

여기서 조물은 단순한 창조가 아니라 인연이 결합하여 나타나는 연기와 통하는 개념입니다. 즉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여러 요인과 조건들이 만나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며, 도자기들도 '空한 본성(공성)'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성파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여러 요인들과 조건들이 만나 세상에 드러나는 것..

한 인간의 인간성 역시 그러한 게 아닐까.
이미 존재하는 부, 모로부터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탄생 이후로부터 만나게 되는 가정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
단, 영이 들어온 이 육 역시도 하나의 환경을 이루게 되며
이 육의 환경은 개인의 의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이므로 몸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이성 및 성정 역시도 말하자면 육의 영역으로 개인이 갈고 닦아야 하는 부분이다.
내 영의 집을 짓는 일이 나의 소임이다.
해도, 미쳐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원망은 거두고
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수행을 하다 보면
옻을 반복하여 칠함으로써 그 바탕이 드러나게 되는 것처럼 개인이 가진 본성도 결국은 닦아져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역시 쌍방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므로 상대 개인에 서운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를 탓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 역시 가여운 중생으로 수행을 길을 가고 있을 뿐.



5. 궤적軌跡

人性과 品性의 일체를 주제로, 팔십 평생을 넘어서까지 일생을 거쳐 펼쳐온 성파 선예의 발자취를 시기별로 보여줍니다...... 이렇듯 한 삶이 열 일을 하는 성파는 스스로 "나는 한 오백 년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렇게 눈물이 흘렀는가

지금 받고 있는 사랑을
그의 눈에 비치는 나를 보았다

단정하고
잘 정리되어 깨끗한
환기가 잘 되어 신선한 공기가 깃들고
방안을 데우는 따뜻한 햇빛이 너무 강하지는 않게 스며드는
조용한 방
깊고 그윽한 향내 품은
맑은 꽃 대하듯이
바라보아주는 그 눈길이 떠올라서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다른 사람이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을 볼 때와는 또 다르게
작품 앞에 서니
그 사랑이 담뿍 느껴졌다


너의 안에 내가 있으니

불안해 말고 어디서든 함께함을

나는 너에게서 나를 보고

너는 나에게서 너를 보고

바라보는 것이 희망이고 꿈이 되는 것은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



6. 물속의 달

옻칠의 방수성을 활용하여, 이번에는 굽은 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칠획과 황하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은 점들로 구성된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물속에 전시하였습니다. 이곳에 사물의 실상은 물결에 의해 일그러져 우리의 눈에 환영처럼 보일 뿐입니다. '물속의 달水月'역시 눈으로는 보이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세계가 성파 선예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5-6개월에 걸쳐 마르면서 '꽃이 피면서 맑아지는'이 옻칠의 활성이야말로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옻칠의 방수성과 활성을 몸소 체득하지 못했다면 성파의 무위와 공 철학을 증명하는 <물속의 달> 같은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환영幻影_

물결을 거둘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어그러짐 가운데 변하지 않는 실상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

착란을 일으키는 것들 가운데 그 실체를 보기 위해 마음을 정신을 다잡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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