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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Oct 31. 2024

시간을 한 번 거슬러

어떤 벅참이 밀려왔다
심장도 얕고 빠르게 뛰고
왈칵 울음도 밀려오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서른까지 살았던 곳
그때의 공기와 온도와 습도와 소리와 햇빛
그 모든 것들이 밀려왔다

고1이던 해
아빠와 둘이서 내 방 도배를 하던 식목일날
열린 창문으로 벚꽃 잎이 팔랑이며 들어왔다
창문 아래로 내려다본 벚나무가 참 예뻤다
라디오를 들으며 밤새 공부할 때
새벽 방송이 시작되면 일어나 그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박선주의 귀로라는 노래와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가 나올 때
공부하다 말고 멍하니 듣다가
라디오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가사를 받아쓴 기억이 있다

참 춥고,
참 더웠던 집이다.

좋았던 것은 용지호수와 도서관이 가까웠던 것
참 많이 걷게 했던 집이다.

주방, 욕실, 베랜다, 안방, 내 방, 동생 방..
집이 외롭지 않게
빈 집엔 언제나 내가 있었다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맞아줄 누군가가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을 때도 있었다.
있었을 것이다.
좋았다
좋기도 했다




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바닥이 온통 노란색이던 달큰한 가을날 밤에
그 아이 삐삐를 확인하던 공중전화 부스가 그대로 있다

아파트 상가 가운데 있던 과자점도 그대로

지하에는 과일가게와 반찬가게가 있었는데 이제는 공실로 있다
경양식집도 한때 있었는데
아빠는 아직도 동생과 거기 갔을 때를 말씀하신다
불판에 고기를 굽는 집도 있었고
2층에는 찻집도 양념차돌박이집도 있었는데

1층 도로변 쪽에 음반가게가 있어서
고등학생 때 길가 스피커에 나오는 노랠 듣고 들어가
이 음반을 달라했는데
NOW였다

그때부터 재건축을 기다리던 아파트가
다행히 아직 재건축이 되지 않아
그때의 그 집을 올려다볼 수 있고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다

본사.. 가 근처라 출장도 자주 오는데
그 시간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오늘도 우연이지만

시간여행하듯
긴긴 시간을 지나
우연히 우연히 여기에 멈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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