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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Nov 11. 2024

正位

뭔가,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드는 날이었다.

잠시 멈춰야 하는 게 아닌지,

어쩌면 이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고

너무 내버려 두는 게 아닌지, 흘러가게, 아무 곳으로나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게 아닌가 갑작스럽게 조바심이 들기도 하는 날이었다.

놓여야 하는 곳, 있어야 하는 자리에 위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요즘 생각했다.


가족의 MRI결과를 보러 갔다.

병원 지하주차장 양쪽이 모두 장애인 주차구역인데 비어있는 자리에는 벽에도 바닥에도 어디에도 장애인주차구역 안내 표시가 없어서 주차해 놓고도 혹시나 싶어 바닥에 엎드려 주차한 차 아래 바닥에 장애인주차구역 그림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바로 다음차례가 진료실에 들어갈 차례라 하여 차를 빼서 다른 주차자리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검사결과 이상은 없었지만 진통의 원인은 아직 찾지 못했다.


주차장이 있는 약국에 갔다.

건물지하에도 주차장이 있지만, 노상에 있으니 편리하다 생각하며 길 건너 약국에 갔다.


시립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빌려야 했다.

주차자리가 한 곳 있었다. 임산부 주차구역 바로 옆이었는데, 바닥에 어떤 색이 칠해져 있었지만 장애인주차 구역도 아니고, 주차금지구역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채 얼른 책을 대출해 왔다.


창원 중앙대로를 걸어야 했다.

11월이기 때문이다.

시청에서 도청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30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으므로 11월이면 꼭 그 길을 걷는다. 오늘은 햇살이 유난히 빛나는 날이었다. 성산아트홀에도 볼 일이 있었으므로 아트홀에 주차하려다 도로변 황색선이 낮시간동안 주차허용구간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빈자리에 주차했다.


걸었다.

걷다가 결국은 어릴 때 살던 집 근처를 다시 맴돌았다. 아파트 상가 가운데 있던, 상호도 내부 인테리어도 그대로인 그 제과점에 들어가 보았다. 냄새도 그대로다. 빵 하나를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그대 로시다. 나이가 든 모습도 아니었고, 그때의 모습, 그 목소리, 그 표정 모두 그대로였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게 테이블에 있는 티슈로 얼른 눈물을 훔쳤다. 무어라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마다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나도 모르게 맴돈다.


용지호수에 앉았다.

호수 주변의 길들, 호수의 벤치들, 호수의 산책로, 나무, 나무들 모두 내 역사의 일부이다.


과태료 안내문이 있었다.

창원 가로수 길로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앞유리에 주차위반 과태료 안내문이 있었다. 내가 인지하기 4분 전에 발급된 안내문이다. 황색 복선 자리에 주차를 했다고 한다. 주차 금지봉을 피해 주차를 했는데, 출차 후 확인해 보니 차자리 일부분에 황색 복선 구간이 걸쳐있었다.

나의 잘못이다.

'그곳'에 놓아두지 않은 나의 잘못이다.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닌 곳에,

두어서는 안 되는 곳에, 둔 것이다.

며칠 나를 따라다녔던 正位.

집을 한 번 정리해야겠다 생각하며 물건들이 각각 정해진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해야겠다고, 각각의 자리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한 번 정리해야겠다 생각했다.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맥없이 띄워둔 것 같아 스스로에게 죄스럽기까지 하는 날들이(었)다. 어차피 정해진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면 나의 발버둥은 가지고 있는 힘을 소진시킬 뿐 방향을 바꾸지도 못하며 새로운 길을 열지도 못한다 생각하며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날들이다. 거리의 누구도 줍지 않고, 쓸지 않는, 버려진 종이조각처럼 바람 부는 대로 떠다니기만 할 뿐인 날들이다. 어디론가 쓸려다니다가 말라 부서져 이 세계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내버려 두고 있는.


정치의 政자를 생각해 보는 요즘이었다. 正자와 定자와 政자. 精, 貞, 情, 整.... '정'으로 소리 나는 한자들의 뜻은 모두 바르고 바람직한 글자들이 많은데 지금의 정치는 왜 그러한가 생각하는 요즘이었다.


과태료 안내문으로 일단, 우선 마침표를 찍기로 한다.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자.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를 생각하자.

(있어야 할 곳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곳은 '엄마'의 자리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칭찬이 아니라 엄마 '노릇'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운 일에 속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누군가 검색어 "이제하 전시"로 나의 브런치에 접근하여 글 몇 편을 읽은 흔적을 보았다. 스물다섯 편. 발행한 지 시일이 지난 글들이므로 아마도 "이제하 전시"로 찾아온 사람이 읽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오늘 써야 하는 글이 있었지만 잠시 미루고 그가 읽은 글들을 따라 읽어보았다. 거기 내가 있었다.

마치 타인처럼 나를 읽어보았다. 나는 글쓴이가 참 흥미롭던데, 글쓴이가 궁금하던데, 뭐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던데, 글쓴이 손 한 번 잡아주고 싶던데, 허락한다면 한 번 안아주고 싶던데, 당신은?이라고 묻고 싶지만 당신이 없다.


가로수길을 한 시간 가까이 걸으며 거의 모든 카페를 탐색했다.

전망은 좋으나 소란스러운 곳도 있었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너무 울리는 곳도 있었고, 선곡의 취향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었고...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다가 한 곳을 찾았다.


당신 손잡고 창밖 하늘을 보아도 좋을 만한 곳.


테이블의 질감과, 유리창의 청소 정도와, 의자의 안락한 정도와, 내부 조도와, 외부에서 들어오는 채광의 정도와, 모든 인테리어적 요소들을 고려하여도 커피 맛보다 더 앞서 순위를 두는 것은 청각적인 요소였다.

선곡. 음악.

배경음악이 없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좋지만, 있어야만 한다면, 부담스럽지 않은 선곡, 편안한 선곡, 스피커의 상태, 볼륨,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말소리의 정도.


아주 가끔 그렇게 글을 읽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흔적도 없이 그렇게 몰아서 읽고 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피드백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에게 이 브런치의 글들은 어떻게 읽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하트표시를 누르는 사람들이 모두 글을 읽고 누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내 글에 시간을 내어 주는 사람.


아직 만나지 못한, 언젠가의 '당신'을 위해 나의 시간을 이곳에 쌓아둔다.

당신을 기다리면서.

당신을 만나기까지 버텨온 시간의 흔적을 넌지시 알리고 싶어서.




그냥,

오늘은 당신이 있으면 좋겠다.

티슈 한 장 뽑아서 건네주기만 해도 좋겠다.





이 거대한 물살이

아주 잠시만 멈춰주면 좋겠다.






너무 많이 떠내려왔고, 갈 길도 너무 멀고, 배도 고프고, 춥고, 춥고, 어둡고, 무섭고.











무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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