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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숲이 안개 사이로 걸어왔다.

by Om asatoma

'혹시'의 조심스러움을 나는 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나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 얼마나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인지를 안다.

내가 조심스러워서 어려움을 느낄 때 즐겨 쓰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의 무게를 안다.

나의 하루와 그의 하루가 가지는 의미가 다름을 안다.

하루의 밀도가 다를 것을 안다.


주고- 였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드리고-'가 아니어도 된다.

'드리고-'여서는 안 되는 것에 더 가깝다.

'드릴-'이유도 없지만 그의 마음이 속에 조금이라도 그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도 나의 입장에서 그의 '드리고-'는 너무나 과분한 표현이다.


'드리고'와 '싶은데'를 띄어 쓸 수 있다는 것에 매력도가 매우 상승했다.


'?' 의미가 통하는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였고, 문장을 마치는 기호까지 완벽했다.


완곡히 어쩌면 조금은 사늘히 사양하였으나 해가 넘어올 때까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의 시간과 그의 시간은 전혀 다른 속도와 전혀 다른 밀도로 움직이고 있음에

조금이라도 어떤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을 죄스럽다 여길 때쯤


오늘 다시 꺼내본 문자 메시지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괜찮을 실까요?'


오타가 아니다.

실수가 아니다.

아마도 '괜찮을까요'와 '괜찮으실까요'를 두고 거듭해서 고쳐 썼을 것이다.

아마도 '괜찮을까요'가 일방적이라 생각하고 조금 더 배려하는 어감이 담긴 '괜찮으실까요'로 고쳤을 것이다.

그 마음과 그 시간이 오롯하게 느껴졌다.


부러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답변이었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면

그건 나의 잘못일 수도 있다.


나는

그가 지내온 세월을 살게 되더라도

한참 손아랫사람에게 아니 그 누구에게도 저 정도의 발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언제일까, 어떤 방식일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근사한 때, 근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할 수도 없는..

함부로 하지도 않겠지만,


어떤.. 엄숙함이 있다.

한치의 거짓도 한치의 과장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함이 있다.



해지는 하늘 극치의 황홀을 보면서

반성문도 아니고 다짐의 글도 아니지만

이렇게 풀지 않고는 담아두기 버거움을

쓴다.



다음은 언제일까, 어떤 방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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