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그의 길이, 나에게는 나의 길이

명절의 인간관계를 통해보는 배려의 철학

by 운곡


雲谷


인생이란, 본디 논쟁의 장이 아니라 조용한 대화의 여정이 아닐까?.


나는 사람들과 감정을 격하게 부딪히는 다툼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을 돌아보면, 누군가와 심한 말다툼이나 몸싸움을 벌인 기억이 거의 없다. 몇 마디를 나누다 결이 다르다고 느껴지면,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말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모든 진리는 언어 너머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나는 불편한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기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 미묘한 간격은, 노자의 '무위(無爲)'와 닮아 있다.


강요된 친밀함은 오히려 관계를 피로하게 하고, 적당한 거리는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여백을 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피곤한 순간은 충고와 잔소리의 경계가 흐려질 때다.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의 삶을 재단하며, “너는 그게 문제야”라거나 “내가 볼 때는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진실을 왜곡하는 환영에 가깝다.


평소에는 애써 피하지만, 명절날이면 이런 불편한 말들의 중심에 서게 된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음과 덕담이 오갈 때, 으레 따라붙는 묵직한 질문들


“요즘 공부는 잘하니? 반에서 몇 등인가?” “취직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사업은 잘 되나?”등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사회적 잣대의 무게를 실은 화살처럼 느껴진다.


나이 든 이들에게는 “자네 딸 아직도 시집 안 갔어?” “그 아들, 아직 취직 못 했다며?”라는 물음이 더해지는데, 그 속에 염려인지 비난인지 조롱인지, 듣는 이는 모호한 안갯속을 걷게 된다....


거기에 종교 이야기나 삶의 방식을 훈계하듯 들려주는 어설픈 충고까지 더해지면, 명절의 따뜻한 분위기는 금세 빛을 잃게 된다.


과도한 간섭은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타인의 영혼을 옭아매는 족쇄일 뿐이다.


더욱이 요즈음은 여기에 “아파트 평수” “부동산 가치 상승” “주식 수익률” “해외여행 자랑”등은 명절 벽화의 화룡점정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형편의 가족이라면 그 이야기는 즐거운 담소로 흘러갈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형편이 엇갈리면, 그 자리는 금세 바늘방석이 되고 감정의 파문은 잔잔히 번진다.


빠듯한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이에게 해외여행이나 부동산 투자 이야기는, 단테의 '신곡'에서처럼 먼 지옥의 속삭임처럼 들릴 뿐이다.


이 질문들과 대화는 결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다만, 오랜 세월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잘 됨'과 '못됨'의 눈금이 무의식 중에 작동할 뿐이다.


믿음도, 인생도 누구의 잣대로 강요할 수 없는 것인데, 사랑을 가장한 간섭은 오히려 서로 마음의 벽을 쌓아갈 뿐이다.


본인이 먼저 말하지 않은 일이라면, 침묵으로 배려하는 것이 최상의 예의라 생각한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배려'와 '존중'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낯선 이방인이 되었을까?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구식 미덕처럼 느껴지는 이 노파심은, 과연 나만의 환상일까?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자신만의 일에 장인 정신을 담아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 또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삶이 아닐까?.


인생은 정답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바다를 찾아가는 긴 여정일지도 모른다.


남보다 늦더라도, 그 물결 속에서 온전히 숨 쉬는 것이야말로 진짜 승리다.


명절은 서로의 속도와 방향을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이솝의 우화처럼, 거북이의 느림도 토끼의 빠름도 그저 본성일 뿐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나는 조급한 경주를 벗어나, 나만의 물결 위에 조용히 노를 젓는다.


누구의 속도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 호흡과 내 파도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이제 거북이다.


인생의 바다는 여전히 출렁이지만, 내 속도의 파도 위에서 나는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항해자로 선다.


비교의 물결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그저 고요한 자존과 작은 평화뿐이다.


가끔 누군가의 화려한 배가 내 곁을 지나가도, 이제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성경 말씀처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듯 그에게는 그의 길이,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삶은 이김이 아니라, 머묾의 예술이기에 각자의 꿈속에서 깨달음은, 결국 그 꿈을 존중하는 데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운곡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 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