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어데 사노

by 운곡

feat. 숨바꼭질


雲谷
릴 적, 새 친구를 데려올 때마다 어머니의 첫마디는 정해져 있었다. “니, 어데 사노”
미처 묻지 못했을 때는 꼭 내게 다시 물으셨다.
“가, 어데 사노?”
그 질문에는 깊은 뜻이 없었다.
우리 동네 아이인지, 조금 먼 동네 아이인지 만 알면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그 말은 경계였지만 차별은 아니었다.

월이 오십 년을 훌쩍 넘어 육십 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
나는 뜻밖에도 같은 질문을 다시 만났다.
손녀의 어린이집 입학을 위해 원장 선생님과 마주 앉은자리에서였다.
아내와 며느리가 함께 있던 그 자리에서 원장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물었다.
“어디 사세요?”
아내와 며느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며느리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아내가 00 아파트요 하고 대답했다.

장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아, 참 좋은 데 사시네요.”
분명 칭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 들었다"라고 했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논밭 위에 세워진 신도시다.
고급 브랜드 아파트와 중간쯤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민영 임대 아파트,
그리고 LH 영구임대 아파트까지 신도시 안에 겹겹이 들어서 있다.

래서 요즘은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에 아파트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사람의 소득, 직업, 생활 수준, 심지어 삶의 태도까지 순식간에 분류된다.
이제 사는 곳은 더 이상 주소가 아니라 삶의 높낮이를 재는 신분증이 되었다.

린 시절, 아이들끼리도 새로 사귀면 꼭 물었다. “니 어데 사노?”
초등학교 때는 “연산 3동”, “연산 5동”처럼 동 단위로 답했고,
중학교에 가면 “연산동”, “망미동”처럼 범위가 조금 넓어졌다.
성인이 되어 객지에 나와 “어디서 왔나?”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저 “부산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디 살아?”라는 질문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판단을 위한 질문이 되었다.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살아도 어느 아파트, 어느 평 형에 사느냐에 따라 아이의 친구 관계부터 부모의 태도, 기대치까지 달라진다.
아파트 이름이 나오는 순간 공기는 살짝 무거워지며, 어떤 엄마는 우리 애랑 놀아도 되겠다고 느끼고, 어떤 엄마는 거리를 두고 슬그머니 화제를 돌린다.

손녀는 밝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또래보다 키도 반 뼘쯤 더 큰, 사람을 챙길 줄 아는 아이다.
다행히 아직은 사는 곳이 아이의 얼굴보다 앞서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이 아이도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너, 어디 살아?” 그리고 이 질문이 아이를 알아보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가르는 말이 되는 순간을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머니가 묻던 “어데 사노”에는 사람 냄새가 있었다.
그 말은 어디서 왔느냐를 묻는 질문이었지 얼마나 가졌느냐를 가르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어디 사세요?”는 다르다.
그 질문 뒤에는 평수와 브랜드, 분양 방식과 대출 여부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우리는 이제 사람을 만나기 전에 사는 곳부터 훑어본다.
아이조차 마음보다 먼저 사는 집으로 분류된다.

은 말을 쓰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전혀 다른 마음으로 묻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은 사람을 알아가기 전에 서열을 먼저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에 사느냐로 존중의 크기가 달라지는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계산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두운 생각에 젖은 무거운 마음을 깨는 한마디...
할아버지 숨바꼭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