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雲谷
내가 20대 시절 부산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할 때 나의 시간은 늘 바다 쪽으로 흘렀다.
파도처럼, 밀려갔다 다시 밀려오는 밀물과 썰물의 물 때....
먼바다에서 조금 느린 듯해도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파도, 내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살았다.
버스가 조금 늦어도, 약속에 몇 분 늦어도 큰일은 아니었다.
그 시절 기다림은 불편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였다.
90년대 IMF 이후 서울로 이사 와서 처음 느낀 것은 이 도시의 시간은 앞으로만 달린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지하철 풍경은 충격에 가까웠다.
나는 평소 걸음이 좀 빠른 편인데도, 지하철 충무로역에서는 늘 누군가 내 어깨를 스치며 앞질러 갔다.
그들은 걷는 것이 아니라 무함마드 알리와 같은 프로 복싱 선수의 경쾌한 스탭 같았다.
출근 시간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그랬다. 아침에도, 점심때도, 저녁 시간에도 사람들은 늘 어딘가에 늦고, 무엇인가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모두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야 하는 걸까?
얼마나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숨 가쁘게 통과하려는 걸까?
가끔 나도 얼떨결에 그들의 속도에 휩쓸려 내달렸다.
숨차도록 따라붙어 보지만 앞선 이들은 이미 최고 속도로 흘렀으며,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
그렇게 내달렸는데도 지하철 문이 눈앞에서 닫히니 내 앞에서 뛰던 젊은 친구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에 손을 얹고 살짝 주저앉아 숨을 고른다. 나 역시 가벼운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환승 때문에 연결되는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지금을 그렇게 소모한 것이라는 것을....
불확실한 ‘다음’은 애타게 잘 쳐다보면서도, 다음 지하철의 고작 몇 분은 견디지 못한다.
5분, 그 짧은 시간 앞에서 사람들은 아쉬운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우리가 아파트 청약에 떨어지면 실망이 크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십 대 일, 수백 대 일의 불투명한 탑승 확률에도 희미한 기대를 안고 긴 시간을 인내하며 기약 없는 다음을 기다려야 하지만, 거의 오차 없이 시간표에 적힌 대로 반드시 다시 오는 지하철만큼 다음이 확실한 공간도 드물다.
“다음에 밥 한번 같이 하자”는 애매한 약속처럼 다음은 언제나 정확한 기약이나 시간은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매끄럽게 벗어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을 위하여 다시 준비하고, 다시 서고, 다시 기대한다.
나는 서울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부터 더 이상 뛰지 않게 되었다.
늦는 것이 포기가 아니라 방향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뛰거나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환승 지하철과 연결되는 순간을 종종 만난다.
삶에서 기다리는 다음도 억지로 앞지르지 않아도, 지금의 걸음을 성실히 걷고 있다면
어느 순간 생각보다 나은 미래가 조용히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도망치듯 달려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걸어가도 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다음이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믿음 하나로 내 삶을 바쁘게 만들지 않으려 한다
에스컬레이터 오른쪽에 가만히 서서 바쁜 사람들을 위해 길을 양보하며 뛰지 않고 걷는다. 이 도시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