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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프레도박 Jan 16. 2018

러빙 빈센트 반 고흐 #15

15화 데생에서 본질을 포착한다.

 고흐는 그림을 그릴 때에 채색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채색 실력이 부족하기 전에 사물을 나름대로 자세히 보고 그리는 데생 실력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고흐는 편지에 ‘데생에서 본질을 포착한다’라는 표현을 했다.

1888년 4월 9일

베르나르 B3

“지금은 꽃 핀 과일나무들, 즉 분홍색 복숭아나무나 희고 노란 배나무에 빠져 있네. 내 붓 터치에는 일정한 양식이 없어. 난 고르지 않은 터치로 캔버스를 채워가고, 또 그렇게 내버려 두지. 두껍게 색칠된 부분들이 있는가 하면 캔버스의 일부는 채워지지 않은 채 남겨지고 또 다른 부분들은 완전히 미완성이야. 다시 손질을 하거나 거친 터치가 가해진 부분도 있어. 테크닉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런 결과물을 보고 당황하고 기분이 상하거나 전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 늘 그렇듯 현장에서 직접 작업을 하는 동안 난 데생에서 본질을 포착하려고 하네. 그다음 빈 공간에 윤곽선을 그려 넣지. 분명한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어는 경우라도 마음에 와 닿았던 것들이야. 이것들 역시 단순화된 색조로 채워 나간다네. 흙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동일한 보랏빛이고, 하늘은 모두 푸른색을 띠는 거야. 초목은 청록색 혹은 황록색이지. 이 경우 노랑이나 푸른 색조들이 의도적으로 강조되네.”

(고흐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A Selftportrait in Art and Letters-, 2007)


  고흐는 편지글에서 데생에서 본질을 포착하려 한다는 말을 했다. 데생이 기본기라는 말이다. 데생이란 사물의 형태와 색채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사물의 특징을 단순화시켜 그린 것이다. 사물의 특징을 발견하고 질문하려면 평소에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고흐는 88년 7월에 아래 같은 글을 테오에게 보낸다. 이 글에서 고흐 자신이 평소에 복잡한 계산, 즉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성의 없이 급하게 본거라고 말해 주어라.”

고흐의 글처럼 이렇게 기본기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없을 것이다.  기본기란 평소에 준비하는 것이지 어느 날 하루 전에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기란 원래 갖고 있는 능력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연습에 의해 완료된 능력이다. 그림을 그릴 때의 기본기란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것이다. 내가 저 오브제를 이렇게 생각했으니 이렇게 표현해보자는 능력이 기본기이다. 고흐는 사물을 자세히 보는 습관에서 그릴 때 생각해야 할 복잡한 원거리나 근거리 표시방법, 붓터치 방법에 대해서 미리 계산하는 습관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사실 원거리를 표현하기 위해 캔버스가 없는 빈 사각 액자를 사용하였다. 이 액자에 실을 대각선으로 이리저리 연결하여 원근법을 측정할 수 있는 그림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 그림 도구를 사용하면 원근법에 의거하여 배치할 사물들의 크기를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밀레의 갈색조의‘씨 뿌리는 사람들’이라는 작품과‘낮잠’이라는 작품이 있다. 고흐는 이  2 작품을 각각 21번, 90번을 모사했다고 한다. 밀레의‘씨 뿌리는 사람들’이란 작품은 언덕에서 내려오면서 씨를 뿌리는 농부를 갈색조로 그린 것이다. 빈센트는 청색 조와 질감을 강조한 붓질을 강조하여 그 자신의 화풍으로 그린다. 기본기란 말 그대로 바탕이 되는 기술이다. 기본은 집으로 치면 주춧돌과 기둥에 해당한다. 주춧돌과 기둥이 똑바로 서있고 견고 해야지 튼튼한 집이 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고흐는 데생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자기만의 화풍과 미술에 대한 철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물을 자세히 보고 데생하는 기본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

  채색이 안되면 채색 실력이 부족한 것인데 왜 소묘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겉 현상만 보고 고치려 한다. 항상 근본적인 원인을 고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묘를 통해서 채색 실력이 향상하기 때문이다. 소묘를 하면서 빛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빛에 따라 변경되는 색의 농도를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묘를 하면서 느낀 색을 그대로 칠하면 그림이 되는 것이다.

  고흐는 채색하기 전에 목탄이나 펜으로 드로잉을 매우 즐겼다. 국내에 빈센트를 소개한 책에 그의 목탄화나 소묘 작품을 소개하는 책은 별로 없다. 그의 소묘화를 보면 정말 잘 그린다. 빈센트는 그의 그림을 친구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나 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지에 그린 드로잉이 많다. 내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싶은데 단 한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실력이 필요하다.

그의 채색의 특징은 그의 드로잉에서 온다. 고흐는 동생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풍족히 유화물감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채색용 유화의 구매 비용의 부족함이 오히려 그의 드로잉을 강하게 하고 채색의 특징을 만드는 동력원이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인가 부족하면 그것을 원인으로 생각한다. 돈이 없으므로 그림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하는 방법이다.


  루시안 프로이트도 소묘의 본질적 강점을 얘기했다. 빈센트는 <프로방스의 추석>이라는 드로잉 작품과 채색화 작품을 남겼다. 현대의 가장 뛰어난 구성 화가로 알려진 루시안 프로이트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처럼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두고 일본 미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나라면 선뜻 19세기의 일본 풍경화 전부를 주고서라도 이 작품과 맞바꿀 것입니다. 이 작품에는 지표면에 대한 뛰어난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지평선을 향해 단순히 뻗어나가는 것을 넘어서서 지표면의 만곡과 원형으로 굽은 모양까지 표현되어 있지요. 드로잉을 잘하기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죠. 위대한 화가의 수와 비교해 볼 때 훌륭한 소묘 화가의 수가 현격히 적은 것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에드가르 드가 등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게이퍼드 마틴,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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