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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프레도박 Jan 16. 2018

러빙 빈센트 반 고흐 #14

14화 고흐가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빈센트는 죽기 마지막 1년 동안 약 140점의 작품을 남긴다. 흔히 빈센트가 좀 더 일찍 화가의 길을 걸었다면, 자살하지 않고 오래 살았더라면 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빈센트가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인간의 삶에 대한 지독한 고민과 고뇌를 가졌기 때문에 자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늦게 발견했다면 1분 1초가 아까웠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더 몰입했던 것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애정과 고뇌가 없었다면 그의 아름다운 그림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잠재력이란 드러나지 않은 숨어있는 능력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은 누구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단지 그 가능성과 잠재력이 어는 사회적 분야에 있는지를 모르거나 자기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모르거나 방향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방향을 알아도 자기 스스로 가두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요가를 배우러 인도에 간 한 청년은 유명한 요가 선생님이 해보지 않은 요가 자세를 해보라고 하는데 잘 안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요가 선생님이‘너는 할 수 있으니 해 보라’라는 말에 다시 해보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자기 자신의 자신의 가능성을 막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도 마찬가지였다. 화가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정한 27살 이전에 그림을 파는 미술 갤러리의 점원, 교회의 전도사도 해보았지만 다 잘 되지 않았었다. 미술 갤러리에서는 잦은 고객과의 이견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탄광촌의 전도사 시절에는 너무 신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그의 단점이 되었다. 빈센트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화상, 전도사 직업에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하는 길이었다. 화가만의 그의 길이었다.

  빈센트는 화가로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었다. 빈센트는 1880년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브뤼셀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빈센트는 화가가 되기로 선언한 후에 약 800여 점의 유화와 1200여 점의 소묘, 펜화를 남긴다. 데생과 펜화는 그의 편지에도 나타나 있다. 빈센트가 이렇게 많은 다작을 했다는 것은 이미 그는 화가가 가장 그의 적성에 가장 맞았던 것이다.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감동한 것을 소묘로, 때로는 펜화로, 때로는 유화로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몰입하는 점이 있는가에 있다. 미국의 필립스 엑시터라는 명문 학교에서는 성적이 탁월하지 않더라도 다른 한 가지 일에 집중했던 기록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인정하고 합격시킨다고 한다. 실제로 모 학생은 성적은 우수하지만 입학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성적이었지만 봉사 활동에 집중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해온 것을 잠재력으로 인정받아 이 학교에 입학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히 집중하거나 몰입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은 힘들더라도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다면 아직은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자기의 생업에 대해 조금만 집중한다면 그 생업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수단으로 변화한다.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인생은 힘들어지는 것이다. 몰입의 기쁨은 작은 일 한 가지라도 깊이 집중적으로 해내는 데 있다. 해냄으로 완료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사람의 삶은 몰입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최근에 나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하다면 내가 무엇에 몰입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면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나에 대한 설명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관심 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집중력과 몰입의 희열을 잃어버렸다. 매스미디어의 무차별한 방송 송출, 끊임없이 알려주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잊어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집중할 만한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평화를 갖지 못한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가지만 어디로 가는지 어디가 목표인지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화면 속의 글자를 보고 있지만 연예인의 가십성 기사, 정치인의 근거 없는 폭로 기사로 가득 쓰여있는 내용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연예인을 좋아해서 그 연예인의 사진과 음악에 집중해서 살고 있다면 이것은 그의 행복일까? 행복일 수도 있고 시간 낭비 일수도 있다. 그가 만약 그 연예인에 대한 online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정기적인 별도의 수익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면 시간 낭비 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방향을 잃어버리고 소비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몰입이다. 평소에는 노는 것 같지만 몰입과 집중을 통해 성과를 만들고 어려운 기술을 개발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지식을 분류하고 정리한다. 192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조지 버나드 쇼는 묘비명에 아래 같이 적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흔히‘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로 번역되어 알려졌다.

최근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과 YOLO는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알려는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한번 살기 때문인 것이다. 시키는 일만 하다가는 내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빈센트는 100년 후에도 자신의 그림이 명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산 것이었다.

빈센트는 나무의 뿌리 그림을 많이 그렸다. 뿌리를 그리면서 자신의 뿌리와 앞으로의 삶을 고뇌했을 것이다. 얼마 전 필자의 아버지 산소 옆에서 10여 년 자라던 도토리나무를 잘랐다. 10 여전에는 낫으로 자를 수 있었는데 이제는 톱을 써서 한참을 잘라야 했다. 뿌리째 뽑으려고 삽질을 해서 근처 흙을 걷어냈지만 역 부족이었다. 한 1m는 파야 할 것 같았다. 30cm쯤 파다가 톱으로 잘랐다. 뿌리째 자르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뿌리 그림이 떠올랐다. 나의 뿌리는 나의 아버지이고 이 잘린 도토리나무의 뿌리는 누가 버린 도토리였을 것이다. 나의 정신적 뿌리는 튼튼하게 얼마나 깊이 어는 곳에 박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그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몰입하는 능력은 가능성과 잠재력의 뿌리다. 몰입할 수 없다면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젖을 먹고 잠자는데 온 시간을 다 보낸다. 먹고 자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아기가 만약에 이 것 말고 다른 것에 집중한다면 생존 가능성은 떨어질 것이다. 아기가 자기의 생존을 위해 먹고 자는 것에만 신경 쓴다고 욕할 사람은 없다. 아기가 생존을 위한 활동에 집중할 때에 아기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소리 없이 커가고 있는 것이다. 내 자리에서 내 잠재력을 보여주는 방법은 몰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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