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프레도박 Jan 17. 2018

러빙 빈센트 반 고흐 #17

17화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고흐는 자기만의 미술에 대한 주관이 있었다. 자신의 그림을 보고 부유한 사람이 아닌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위로와 평안을 얻기를 바랐다. 이것이 그의 예술에 대한 철학이었다.

1880년 11월 1일
“예컨대 소, 말, 양 따위의 해부도를 이곳 수의 학교에서 얻을 생각이야. 그래서 인간을 해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것들을 그렸으면 해. 비율의 법칙, 명암, 원근 등 하나의 대상을 그리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이 있지. 이런 지식이 결여되면 언제나 헛된 시도만 되풀이할 뿐 절대로 열매를 맺지는 못할 거야”
(고흐 빈센트, 2007).

비율의 법칙, 명암, 원근법을 충분히 알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 빈센트의 미술에 대한 주관이다. 그의 그림아 그의 정신적 스승인 밀레의 그림보다도 더 많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 된 것은 그의 주관 때문이었다.


 주관이란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을 말한다. 즉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이성적인 논리를 갖는 것을 말한다. 나의 인간관, 인생관, 세계관을 바탕으로 주관이 생긴다. 인간과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세계에 대한 진정한 고민 없이는 뿌리가 없는 주관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똑바로 이해하고 틀린 점이나 나와 다른 점을 알게 된다면 그때에 주관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 조금씩 다르거나 아주 다르다. 어쩌면 20여 년을 다르게 경험한 사람이 의견이 100% 같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생기는 것은 정말 당연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서로 로봇이 아닌 이상 쓰는 단어가 의미가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다. 때론 같은 용어인데 아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주관이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주관이란 원래 그 자체가 완벽할 수가 없는 구조적인 특징이 있다. 즉 장님들이 코끼리를 보지 못하고 각자 위치에서 코끼리를 만진 것만을 가지고 코끼리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주관이다. 따라서 시대나 상황이 변화하게 되면 주관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주관이란 신념이 아니라 그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주관과 배려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주관이 있는 사람은 둘로 나뉜다. 타인을 배려하는 주관과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주관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주장하는 것은 이기적인 주관이다. 내 의견을 주장했으면 타인의 주장도 경청하는 자세가 있어야 주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주관과 고집은 다르다. 고집은 논리적인 근거 없이 막연한 경험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주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집이 생기는 것은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경험을 주관의 논리적인 근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관을 갖으려면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타인의 생각의 근거를 논리적으로 비판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잡념과는 다른 것이다. 잡념은 말 그대로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지 못하면 생기는 것이다.

   뚜렷한 자기 주관을 갖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혼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의 감정이나 의견을 많이 말해보거나 써 보아야 한다. 듣거나 읽거나 보는 것보다도 말하고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표현해야만 뇌에서 중요한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뇌 기억 세포에 깊숙이 저장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공부란 투입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90%의 출력과 10%의 입력으로 이루어진다.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는 방법은 말하고 쓰는 형식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빈센트도 스스로 그림을 자주 그리면서 비율의 법칙, 명암, 원근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90년 6월 5일 W22
“내가 작업을 하면서 가장 관심을 갖는 건-즉 최대의 관심분야는-초상화법이야. 현대 초상화법이란다.  난 이것을 색채를 통해 추구하지. 이것이 나 혼자만의 방식은 아닐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나의 목표야. 한 세기 뒤의 사람들이 이 초상화들을 보며 환영 같다고 말할, 그런 초상화를 그리고 싶단다. 그러니까 사진과 같은 닮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인물에 표정과 기품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색채에 대한 현대적인 지식과 기호를 사용해 여러 감정들을 표현함으로써 이 목표에 이르고자 해. 그래서 가셰 박사의 초상화에서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지나치게 구운 벽돌색으로 표현하는 한편, 머리털은 붉게 칠하고, 흰 모자 주의로 원경의 푸른 언덕들이 보이도록 했지. 옷은 군청색인데, 그 때문에 벽돌색 얼굴이 강조되어 예기치 못한 창백함을 드러낸다나. 그의 손, 산부인과 의사의 이 손은 얼굴보다 더 창백하지. 그의 앞에 있는 정원의 붉은 탁자 위에는 노란색 소설 몇 권과 짙은 자줏빛 디기탈리스가 놓여 있어. 내 자화상도 아주 비슷하단다. 푸른색은 남쪽 지방의 아름다운 푸른색이며, 옷은 밝은 연자주색이야.”
(고흐 빈센트, 2007).
1890년 6월 12일 여동생 W23
“가세 박사의 초상화를 그렸단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의사의 멜랑콜릭 한 표정을 보며 그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바로 이런 식으로 그려야 하는 거야. 냉정한 모습의 옛 초상화들과 비교하면 오늘날 사람들의 얼굴에는 얼마나 다양한 표정과 열정이 새겨 있는지를 이 그림을 통해 깨달을 수 있겠지. 어떤 기대감이랄지, 고전적인 특성이랄지, 그런 거란다. 슬프지만 부드럽고, 분명하고도 명철한 모습. 바로 이런 식으로 많은 초상화들이 그려져야 할 거야.”
(고흐 빈센트, 2007)     

 위의 편지 2가지 내용은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와 색채에 대한 주관이다. 화가가 색채에 대한 주관이 없다면 그는 이미 예술가가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만의 주관이 있는 초상화는 후기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그 당시에 색채로 인물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겠다는 것은 그의 초상화에 대한 뚜렷하고 확실한 신념 같은 주관이었다.

 인간은 주관이 있어야 한다. 트렌드의 본질을 보는 자기만의 주관이 있어야 한다. 트렌드가 있지만 무작정 트렌드를 따라가서는 안된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수많은 투자자를 모을 수 있는 뜨거운 주제이지만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의 한계 또한 명확히 알고 접근해야 한다. 앞으로 이 기술들을 기반으로 한 많은 스타트업과 기존 업체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이때에도 핵심은 기존 업체와 색다른 견해와 주관을 가지고 서비스할 수 있어야 한다.  한때 한국의 커뮤니티 서비스를 주름잡던 싸이월드는 사라지고 페이스북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차이가 아니다. 고객이 필요한 서비스를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배경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개인의 주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애플은 주로 디자인 침해 관련한 특허 소송이고 삼성전자는 대부분 H/W기반의 기술을 특허 소송건으로 한다. 애플은 디자인을 우선하는 주관을 갖고 삼성전자는 H/W를 중시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계와 인간을 향한 자기 주관이 있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러빙 빈센트 반 고흐 #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