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이예지 양
차에서 내려 네 가방과 아빠 가방 두 개, 외할머니가 챙겨 준 반찬까지 꺼내니 벌써 노는 손이 없었다. 발로 차문을 닫으며 주머니 속 자동차열쇠를 가까스로 꺼냈다. 고작 잠금단추 한 번 누르는 일에 꽤 품을 들였다. 그 작은 가방만 너에게 맡겼어도 간단한 동작인데 아직 짐을 맡길 나이가 아니라는 게 엄마 지침이다. 지갑과 휴대전화까지 제대로 챙긴 것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 망설이는 듯한 네 모습이 걸렸다. 그런 애매한 상황에서는 모른 척 기다리는 게 아빠 방식이다. 망설이는 이유가 있을 테고 그 고비는 스스로 넘는 게 대체로 맞더라. 다행히 아무 보조 없이 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빠, 폰 주세요."
"폰? 뭐 하게?"
"그냥요."
게임을 하는 아이도 아닌 데다 아빠 휴대전화에 네 흥미를 끌만한 것이 없어 의아했지만 일단 넘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에 들어갈 때까지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만 있더구나. 현관에서 양손 가득했던 짐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자 너는 휴대전화를 다시 건넸다. 그리고 냉큼 네 가방만 챙겨 거실로 쪼르륵 가더니 노트와 연필을 급하게 꺼내 뭔가를 적었다.
'아빠 짐을 들어줬어요.'
'알림장'이라고 적힌 노트에 또박또박 새긴 이 선행에 물론 거짓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