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이예지 양
엄마가 나가면서 너에게는 숙제를, 아빠에게는 청소를 시켰다. 거듭되는 당부 횟수는 불신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 불신에 부응하듯 너는 숙제 빼고, 아빠는 청소 빼고 뭐든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긴 평화를 유지하려면 지금 평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예감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까지는 됐고, 그나마 각자 임무를 수월하게 처리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이런 제안까지 닿았다.
"아빠가 예지 숙제를 하고 예지가 아빠 청소를 하면 안 될까?"
"아니, 안 돼."
거래 과정에서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다. 그런 판단이 좋을수록 거래 만족도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할 여지조차 없이 아빠 제안을 단호하게 끊는 기준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설마 숙제가 좋니?
"내 숙제는 아빠한테 쉽지만 아빠 청소는 나한테 힘들어."
무엇보다 대구가 맞아떨어져서 좋았다. 이제 섣부른 수작은 통하지 않겠구나 싶어 아쉬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