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역할

여덟 살 이예지 양

by 이승환

어릴 때부터 뚝딱 그려내는 그림이 신통했다. 얼마나 대단한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 밑그림도 색칠도 그럴듯해 귀하게 여긴다. 특히 색을 고르는 감각은 아빠보다 낫더라. 그런 네가 빨간 외투와 분홍 외투가 검정 체육복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어두운 색 외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딸 감각과 별개로 합리적으로 가계를 꾸리는 게 엄마 고민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만큼 더 효율적인 지출을 셈할 수밖에 없었다. 산타에게 올해 선물로 어두운 색 외투를 부탁하면 어떻겠느냐는 엄마 제안은 그래서 타당했다. 아빠라도 그렇게 권했을 것이다.


"산타할아버지께는 다른 선물을 얘기할 게 있어. 그냥 엄마가 사."


각자 역할에 충실해달라는 여덟 살 아이 요구에 당장 반박하기 어려웠다. 산타에게 선물을 받을 만큼 지난 1년이 자신 있는지도 궁금했다. 올해도 울기는 많이 울었는데 착한 일만 기억하나 싶었다. 다 떠나서 너 정말 산타를 믿기는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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