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이예지 양
"아빠, 내가 용기가 없어요?"
네가 생각하는 '용기'라는 게 갑자기 궁금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 어두운 곳을 혼자 걸을 수 있는 용기? 무서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용기? 괴롭히는 친구에게 야무지게 맞서는 용기?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용기인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종종 묻고 답하지만 정작 묻는 사람은 뭘 묻는지, 답하는 사람은 뭘 답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아빠는 그런 문답이라도 끊기는 것보다는 이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문제풀이와 달리 삶은 오차를 줄이면서 답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진짜 용기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거 아닐까. 엄마·아빠가 서로 잘못한 거 없다고 싸우는 거 봤지? 용기가 없어서 그래. 예지는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잖아. 엄마·아빠보다 훨씬 용기 있는 사람이지."
배시시 웃는 모습이 예뻤다. 너에게 더 잘하고 싶은 용기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