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혼자였다.
말없이, 길 위를 걸었다. 걷다 뛰었고, 뛰다 멈추었다.
7년쯤 되는 시간 동안, 내 몸은 나만의 리듬에 귀 기울였다.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 누구에게도 보이려 하지 않으며.
달리기란 나에게 그러한 것이었다.
내 숨과 발끝만이 알고 있는 조용한 언어.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일이 생겼다.
또래들이 모인 밴드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나는 여러 개의 숨결과 속도를 만났다.
그들과 뛰며 알게 된 것—내 안에 작은 불씨 하나가 깨어났다는 것.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마음.
나를 위해 준비된 거리 위를, 정해진 출발선에서 함께 걷고 달리는 그 시간에, 나도 있고 싶었다.
기록을 꺼내 보았다.
가장 길게 뛰었던 거리, 가장 빠르게 달렸던 아침, 늦은 저녁의 숨소리와 함께 남겨진 수치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것들은 초라했다.
풀코스를 도전하기엔 내 몸은 아직 작았고, 10km는 이미 익숙했다.
남은 선택지는 하프마라톤. 익숙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거리였다.
날씨를 생각했다.
더워도 안 되고, 추워도 안 되는 계절.
10월쯤, 경주에서 열리는 대회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어쩐지 고요한 역사와 긴 숨결이 어울려 있는 도시 같았다.
그러나 내가 알아본 순간, 이미 모든 신청은 마감된 상태였다.
몰랐다. 대회가 이렇게 빨리 마감되는 줄.
이미 마라톤은 어떤 유행처럼, 예측할 수 없는 열기로 번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미리미리 자리를 확보해두고 있었다.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이, 들려온 반가운 소식.
추가접수.
그 문이 아주 잠깐 다시 열렸고, 나는 그 틈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10월, 첫 대회 날.
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줄지어 서 있었다.
13,000명이 넘는 러너들. 저마다의 이유, 저마다의 상처, 저마다의 희망을 품은 발소리들이, 출발선 앞에 모여 있었다.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뱀띠 마라톤의 친구들이 있었다.
풀코스를 수십 번이나 뛴 친구들, 서브3를 달성할 때마다 다시 그 경지를 밟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 친구는 내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했고, 또 한 친구는 나처럼 처음으로 하프에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이전에 내가 뛴 가장 긴 거리는 18km였다.
충분하지 않았다.
불안은, 출발 신호가 울리자 물처럼 흩어졌다.
5km 지점쯤, 비는 여전히 내렸고, 나와 친구의 발소리는 조용히 비를 밟았다.
10km를 지날 때, 내 숨은 고르게 이어졌고, 마음은 묘하게 안정되었다.
하지만 15km 이후, 몸은 무거워졌다. 무릎이 뻐근했고, 한순간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스치듯 지나갔다.
17km를 지날 즈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바람 속에 놓인 경주의 풍경. 오래된 돌, 조용히 녹슬어가는 시간.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본 그 길들을, 나는 지금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내 마음이 멈추었다. 아니, 몸이 멈추었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그 풍경을 ‘보고 있다’는 사실, 숨이 헐떡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
달리고 있다는 감각이 기쁨과도 슬픔과도 닮은 무언가로 번져갔다.
18km를 지나면서, 달리기는 다시 속도를 얻었다. 마지막 3km, 나는 거의 날듯이 뛰었다.
경주시내를 지나, 시민운동장이 보일 때쯤엔 다리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달려가고 있었다.
1시간 56분.
평범한 숫자, 그러나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완주’라는 말을 온몸으로 배웠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온천에서 식은 몸을 녹이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조용히 다짐했다.
내년에는, 풀코스를.
더 멀고, 더 깊이, 나를 데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