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_달리기 창고_연금
두 다리로 쌓는 연금통장
달리기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기술이다.
빠르게 도망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사냥하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가닿기 위해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이유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달리는 이유도 아마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다.
운동이라 불리는 것들 중에서 달리기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기계의 도움은 없다.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으면 바퀴가 굴러가 주지도 않고,
수영처럼 물의 부력이 몸을 받쳐주지도 않는다.
오직 내 다리와 폐, 그리고 심장.
기껏해야 한 쌍의 러닝화가 작은 위안처럼 붙어 있을 뿐이다.
달리기를 하면, 그날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컨디션이 나쁘면 한 걸음이 무겁고, 몸이 가볍다면 발이 날아간다.
정직한 몸.
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게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속이지 않기.
나를, 남을, 삶을.
거리는 늘어날수록 몸은 지친다.
늘어난 만큼 체력도 따라올 줄 알았는데,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몸은 기계가 아니다.
근육은 반복을 통해 단단해지지만, 무한 반복은 허락하지 않는다.
뼈도, 관절도, 심장도 그렇다.
그래서 달리기는 겸손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겸손은 체력이라는 이름으로 내 일상 속에 내려 스며든다.
신기한 일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웬만한 일들에 쉽게 지치지 않게 되었다.
밤을 새워도 무너지지 않고,
감정의 굴곡에도 덜 흔들린다.
카페인 없이도 하루를 버티고,
건강식품 하나 없이도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
몸이 만든 힘이 마음을 떠받치고,
그 마음이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운다.
마라톤을 하루 앞두고도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날 풀코스를 완주하는 친구들을 본다.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달리기가 만들어낸 저력은 분명하다.
그것은 ‘버티는 힘’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버티는 힘.
달리기라는 단순한 반복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 힘이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만든 문장이 있다.
“적응은 저항력을 만든다.”
달리기를 하며 이 말을 몸으로 배웠다.
거리와 시간에 적응하면서,
고된 일상의 스트레스에도 점점 무뎌졌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달린다.
달리고 나면, 몸에서 증기가 피어오른다.
한겨울에도 땀은 옷을 뚫고 나온다.
폐는 확장되고, 심장은 불덩이처럼 뜨겁다.
그 격렬함이 지나가고 나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평온이 찾아온다.
그 평온은 아무런 약도, 명상도, 대화도 주지 못했던 것.
달린 자만이 얻는 고요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칠십, 팔십의 주자들이
나보다 앞서 풀코스를 뛰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지팡이도, 보조기구도 필요하지 않았다.
바람을 가르며, 자신의 호흡만으로 그 긴 거리를 달리고 돌아온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나이에 나도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아니,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들은 누군가의 부축 없이,
자신의 두 다리로 이 땅을 뛰고 있었다.
햇살과 나무 그늘, 바람의 결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건 연금이구나 생각했다.
달리기 연금.
지금 흘리는 땀이
노후의 나를 지켜줄 거라는 확신.
병원 침대 위가 아니라,
요양병원의 창틀 안이 아니라,
이 길 위에서 나도 늙어가고 싶다.
이 연금은 손실이 없다.
더 이상 부어야 할 돈도 없고,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매일 한 걸음씩,
그저 내 두 다리로 조금씩 저축하면 된다.
그러면 훗날,
내가 늙은 날에도
이 몸은 여전히 삶을 누릴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달리기 연금을 시작하지 않겠는가.
두 다리가 허락된 지금,
가장 확실하고 아름다운 준비를. 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