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창고 2_인생 2막 러너 1

평범한 러너들의 이야기 하나, 울산 마라토너 인터뷰

by 약속의 땅


얼마 전, 내가 자주 달리는 호수를 한 바퀴 달리는 동안 문득 스쳐가는 러너들의 수를 세어본 적이 있다.

조깅하는 사람, 러닝화를 신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거침없이 달리는 사람, 그날 나와 마주친 러너는 40명 남짓이었다.

걷는 사람은 뺐다.


오롯이 ‘달리는 사람’만 눈으로 계수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이 호수를 돌며 마주치는 러너는 기껏해야 2-3명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러닝 인구는 약 1,000만 명. 2017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물론 이 안에는 꾸준히 달리는 사람뿐 아니라, 러닝을 한두 번 경험해 본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숫자가 말해주는 건분명하다.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이유만큼이나 이야기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가끔 호수를 달리며 마주치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저 사람은 어떤 계기로

달리기를 시작했을까?"
건강을 위해서일까, 다이어트를 위해서일까,

혹은 말 못 할 아픔을 치유하려 달리는 걸까.
짐작은 해보지만, 대부분 알 수 없다.

가끔 주변에 달리기를 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알게 된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도 다르고, 달리며 변화된 삶도 다르고, 달리기를 통해 얻는 다채로움도 다르다는 것. 나는 ‘크루’나 ‘동호회’와 함께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또래들과 1년에 몇 번은 꼭 만나 함께 달린다.

밴드를 통해 서로의 훈련을 인증하고, 각자의 일상 속에서 뛰는 시간을 응원하며, 가끔은 누가 벙을 치면 함께 모여 달리기를 즐긴다.


달리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도 달리기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른다. 그렇게 서로의 삶의 무게를 나누고, 내일을 향한 다짐을 확인하며, ‘함께 달리는 삶’이 주는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이들은 평범속에 비범한 러너들이다. 누구는 풀코스를 수십 번 , 누구는울트라마라톤을, 어떤 이는 더 높은 기록을 향해 달린다.
이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진심’으로 달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명한 선수도 아니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인물도 아니다. 그저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자신만의 리듬으로,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묵묵히 달려가는 러너들이다.


오늘, 그 첫 번째 이야기.

울산에 사는 친구의 러닝을 소개한다.


<울산 마라토너 양진경과의 인터뷰 >


“마라톤은 내 종교입니다” -양진경-

유치원 선생님, 아이 돌보미,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마라토너 '양진경'을 만나다

Q. 안녕하세요, 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에 사는 유치원 교사이자, 정부 공식 아이돌보미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평일엔 식당일도 도맡아 하는 평범하지만 바쁜 아줌마랍니다.


무엇보다 저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들의 엄마이며, 고양이 두 마리의 엄마이기도 해요. 이렇게 맡은 역할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무언가’로만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Q. 그렇게 바쁜 와중에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둘째를 낳고 나서 육아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그 시기엔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았죠.

그러다 철인 3종 경기하는 남편의 권유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뛰기 시작했어요.

마라톤의 '마' 자도 모르던 제가, 처음엔 3분만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나는 이 운동 체질 아니다”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다 보니, 어느새 16년째 새벽을 달리고 있더라고요."


Q. 16년이라니요!

정말 놀라운데요.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처음엔 그저 뛰는 게 좋았어요.

그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기록이 단축되기 시작하고, 대회에 나가면 입상도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이 커졌어요.

소풍 가는 마음으로 즐겁게 참가하던 대회가,

점점 결과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로 변해버리더라고요.


Q. 그런 부담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기록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남편과 함께 철인 3종 경기에도 도전해 봤어요.

바다수영도 배우고, 울트라마라톤도 뛰어봤죠.

그 경험들을 통해 저는 결국 다시 마라톤으로 돌아왔어요.

‘아, 이게 나한테 가장 잘 맞는 운동이구나’

하고요.


지금은 기록 욕심 없이, 그냥 여행하듯 지역 곳곳을 달리고 있어요.


저만의 목표는

"환갑까지 풀코스 100번 완주!"

지금까지 54번째 풀코스를 뛰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에요.


Q. 우와 정말 멋진 목표인데요?

그렇다면 마라톤이 삶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마라톤은 인생 같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정말 그래요.


풀코스 하나를 완주할 때마다

저는 인생의 한 구간을 지나온 기분이에요.


힘들고 지칠 땐 ‘그래도 간다’는 마음 하나로, 울고 웃고… 그러다 결승선을 지나며 느끼는 벅참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 과정 속에서 저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 줄고,일상의 행복을 더 잘 느끼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신체와 강한 정신력을 갖게 되었어요.

종교가 없는 저에겐, 마라톤이 오히려 삶을 붙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었달까요.


Q. 평소엔 그럼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하시는지 소개를 부탁합니다.


지금은 기록을 위한 특별한 훈련은 하지 않아요. 예전엔 인터벌, 산악훈련, 템포런 등 다양한 훈련을 해봤지만,

지금은 새벽마다 나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주 5일은 혼자 강변길을 달리고,

주말엔 소속된 돌고래마라톤 클럽 회원들과 장거리런을 즐겨요.

그 길 위에서 저는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내 속도로 살아가고 있어요.


Q. 혹시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을까요?


하나 꼽자면, 2018년에 혼자 떠났던 제주도 4연 풀 대회예요.

4일 동안 매일 풀코스를 뛰며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죠.

제주 바다와 풍광, 고요한 바람,

그리고 나 자신…

모든 게 너무 좋아서 아직도 그 시간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그리고 운 좋게 여자 종합 2위도 했어요!

또 하나는 영덕 해변마라톤이에요.

한여름 뙤약볕 아래 하프코스를 뛰다가 4위에서 6위로 떨어졌는데,

그 사이에 쌍코피가 터졌거든요.

진짜 육체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낀 순간이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단단해진 날이었죠.


Q.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이제는 ‘기록’보다 ‘여정’이 중요해졌어요.

앞으로도 마라톤을 통해 새로운 장소들을 여행하고, 낯선 풍경을 뛰고, 낯선 자신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요즘은 같은 나이, 같은 띠, 같은 꿈을 꾸는


전국의 **‘77뱀띠 마라토너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것도 정말 큰 즐거움이에요.

그래서 앞으로의 마라톤 여정이 더욱 기대되고설레요.


Q.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숨이 턱 막혀서 "난 안 돼"라고 말하게 될 순간이 반드시 와요. 근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단 10초라도 더 가보세요.

그 10초가 쌓여서 인생이 달라져요.


달리기는 멋진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사람이 하는 운동이라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 여러분도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처음 달리는 사람은 하나 같이 말한다. 어떻게 5k를 달려요? 멈추지 않고요?

그러나 러너들은 안다.

저 질문은 곧 바뀐다는 것을.

어떻게 풀코스를 뛸 수 있냐고?로 바뀐다.


양진경은 40대의 끝자락을 달리며 자신의 나이보다 많은 풀코스를 뛰었다.

아내로, 엄마로, 교사로, 식당주인으로...

자신의 이름 대신 불리던 호칭을 그대로 짊어지고, 새벽마다 뛰는 그 길 위에서 만큼은 마라토너 양진경으로 호흡한다. 그리고 여전히 땀을 흘리며 주어진 인생을 묵묵히 살아낸다.


버겁게 다가 올 앞으로의 모든 삶의 무게들이 있지만 이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만의 루틴으로 멋진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멈추지 않는 태도로 달리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울산의 러너 양진경의 마라톤은

그 자체로 인생이었고,

기도였고, 쉼이자 싸움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교사로, 보이지 않는수많은 자리에서 묵묵히 달리며 오늘도 그녀는 말한다.


“마라톤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라고...


****다음 시간은 전 프로축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광양에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러너를 만나보겠습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