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주국제마라톤 후기
경주 마라톤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부상 회복과 생업의 일상에 밀려
글을 쓰지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목표의 절반을 이루었다.
완주는 했다. 하지만 서브 4는 이루지 못했다.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내가 그토록 조심했던 부상 때문이었다.
대회를 2주 앞둔 어느 날,
훈련의 마지막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추석 연휴로 내려간 영월의 새벽 공기 속에서,
나는 평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오른쪽 발목이 꺾였다.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지만, 곧 통증이 올라왔다.
움푹 팬 도로 한편에 앉았다.
부어오르는 발목을 보며,
‘이러다 못 뛰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이상하게도 그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인데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생생했다.
근처 슈퍼 앞 낡은 의자에 앉아 발목을 만져보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차도, 사람도 없는 시골 아침이었다. 지갑도 두고 왔다.
절뚝이며 걷던 중, 마침 손님을 내려주던 택시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흔들었고, 다행히 기사가 차를 세웠다.
계좌이체가 되느냐 묻자, 된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집 앞 편의점에서 얼음을 사 발목을 식혔다.
연휴가 남아 있었고, 일정도 있었다.
그 주는 그렇게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다.
연휴가 끝난 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말했다.
“최소한 2주는 쉬셔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 나를 보더니 덧붙였다.
“그래도 뛰실 거잖아요?”
나는 웃었다. 어쩐지 들킨 기분이었다.
매일 치료를 받으며 경주로 내려갔다.
‘통증이 오면 걸어야지.’ 그 생각 하나로
마음을 다잡았다.
대회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죽과 바나나로 가볍게 식사하고,
발목에 테이핑을 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뛰기엔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출발선에 선 러너들의 표정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혼자라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했지만,
어쩌겠는가. 달리기는 언제나 혼자의 싸움이었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수많은 발자국이 함께 움직였다.
‘무리하지 말자. 발목에 신호가 오면 즉시 멈추자.’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6km 지점에서 갑작스레 화장실 신호가 왔다.
참을까, 갈까. 결국 멈췄다. 5분이 흘렀다.
10km 이후 다시 페이스를 올렸다.
통증은 없었다.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15km 부근에서 또 신호가 왔다.
결국 한 번 더 들렀다. 7분이 더 흘렀다.
‘이젠 절대 멈추지 말자.’ 다짐하며 뛰었다.
23km를 지나며 몸이 풀리는 듯했다.
속도가 올라갔다.
하지만 곧 발목이 다시 신호를 보냈다.
32km쯤, 통증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왼발로 체중을 옮기자, 균형이 무너졌다.
37km 지점에서는 근육 경련이 찾아왔다.
멈추면 끝이었다. 걷듯 뛰었다.
발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골인은 멀기만 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포기해야 할까?”
하지만 발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건 오기가 아니었다. 그냥 내 안의 본능이었다.
걸어서라도 가야 했다.
골인지점이 보였을 때, 모든 게 희미해졌다.
절뚝이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
04시간 14분 38초.
내 생애 첫 풀코스의 기록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수고했어요!” 낯선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완주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잖아. 잘했어.
돌아보면, 부상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언제든 일어난다.
그래서 마라톤은 늘 인생 같다.
비록 서브 4는 실패했지만, 완주는 성공이었다.
그 기록 안엔 통증, 변수, 후회,
그리고 작은 기적이 함께 있었다.
이제 발목을 고치고 다시 준비할 것이다.
마라톤의 진짜 묘미는 누군가를 이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까.
주로 위를 달리던 중,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한 여성의 싱글렛이 눈에 들어왔다.
“77 러너.”
잠시 동갑인가 생각했지만, 65년생 뱀띠였다.
12살 많은 그분이 나보다 빠른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그래, 나도 계속 달릴 수 있겠구나.
아쉬움과 설렘, 그리고 다음을 향한 의지가
함께 남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나의 첫 풀코스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