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익어가는 계절

by 약속의 땅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고, 마라톤은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근육에 젖산이 쌓이듯 마음에도 걱정이 겹겹이 쌓인다. 스스로 훈련 계획을 세우고 거리를 늘려가지만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거리도 늘어나야 하고, 기록도 빨라져야 하는데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다. 원하는 속도와 거리를 마음대로 달릴 수 없으니, 대회를 잘 치를 수 있을까 스스로 근심을 키운다.


그러다가도 막상 집 밖으로 나서면 생각이 바뀐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기록에 목을 매었더라.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거지, 뭘 그리 숫자에 연연하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간사한 마음이다. 엿장수 가위질처럼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 알 듯하면서도 알 수 없다.


풀코스를 준비하며 주 3~4회 달린다. 달리기를 위해 달리는 것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달리지 않으면 달릴 수 없으니 결국 달려야 한다. 다른 러너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마일리지지만, 인터벌도 해보고 언덕 코스도 오르며, 한강으로 나가 긴 거리를 달리기도 한다. 작년 하프 마라톤을 준비할 때는 15km를 넘어서면서 다리가 묶이고 근육이 잠기곤 했다. ‘중간에 포기하면 어쩌지?’ 불안했지만, 달리다 보니 결국 풀코스를 준비하는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는 20km를 훌쩍 넘어도 견딜 만하다. 훈련량이 부족해도 달린 만큼 몸이 익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30km쯤 되어야 다리가 잠기니, 조금은 성장한 셈이다.


욕심은 대회 전까지 35km를 한 번쯤 뛰어보는 것이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또 괜한 걱정을 한다.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대회가 열리고, 러너들은 기록의 선물을 받는다. 친구들의 신기록과 완주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괜스레 조급해진다.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내 위치를 확인하려는 습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남은 2주, 이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몰입하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성실하게 쌓은 만큼의 결과를 기대하며 달리기를 즐겨야 한다. 달리기는 내 생업이 아니니까.


시간도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리고, 나의 달리기도 디데이를 향해 달려간다. 주어진 삶도 달리기처럼, 노력과 들인 시간만큼의 결과가 돌아온다면 얼마나 보람될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오히려 그래서 달리기가 더 매력적 인지도 모른다.


달리기도 익어가고, 내 세월도 익어가고, 인생도 그렇게 익어간다. 잘 익어갔으면 한다. 쭉정이가 되지 않도록.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