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D 훈련
어느새 계절은 9월의 중순을 넘어섰다. 경주 마라톤까지 이제 딱 한 달. 집안일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선선한 가을 공기는 땀으로 달궈진 몸을 식혀주고, 그래서인지 다리가 저어가기에 가볍다. 여름의 더위 속에서는 몇 걸음 내딛기조차 힘겹던 순간들이 떠오르는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달리는 일은 작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한 주 단위로 멀리 달리기(LSD)를 시도하고 있다. 페이스를 잃고 14km에서 멈춘 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다짐하며 15km를 버틴 날, 그리고 “조금만 더”라는 욕심으로 21km를 완주한 날. 기록으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내 몸에는 분명 변화가 스며든다.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족쯤은 된다. 긴 거리를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 그것이 훈련의 목적이지만 달리다 보면 욕심이 앞선다.
몸이 적응되는 5km를 지나면, 어느 순간 몸은 이성을 제쳐 두고 홀로 나아가려 한다. 속도가 붙고, 호흡이 거칠어질 때마다 스스로 고삐를 당기지 않으면 오래 달리기를 할 수 없다. 달리기는 결국 속도조절의 싸움이다.
몸이 가벼워질 때는 서두르지 않고, 무거워질 때는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몸과 이성이 부딪히며 합의점을 찾는 과정을 거치며 몸은 무탈하게 땅을 저어갈수 있다.
가끔은 내 이성의 감각과 실제 몸 상태가 어긋나기도 한다. 합의불발. 그럴 때면 손목에 찬 시계가 유일한 기준이 된다. 문명의 숫자가 없었다면 이미 속도에 취해버렸을 몸을 겨우 붙잡는다. “조금만 더”라고 속삭이는 몸을 억누르며, 결국은 이성이 달리기의 방향키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완주를 위해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단순하다. 속도를 절제하는 것.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매번 뛰면서 다시 확인한다. 다른 러너가 내 앞을 스쳐 나갈 때, 내 안의 경쟁심이 고개를 든다. 그를 따라잡고 싶고, 뒤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잡히지 않으려 더 빠르게 달리고 싶다. 그 순간 몸은 스스로 경주를 만들어낸다. 이걸 참아내지 못할 때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페이스 오버! 결국 마라톤은 타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몸과 이성의 합의라는 사실을 배워간다.
이제 다가오는 주말, 30km 롱런을 준비한다. 탄산음료를 멀리하고, 저녁 식사는 단백질과 채소 위주로 가볍게 조절한다. 인터벌 훈련으로 심폐를 단련하고,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몸의 균형을 맞춘다.
하나의 달리기를 위해 여러 요소가 집중되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삶과도 맞닿아 있다. 욕심으로 앞서 나갔던 순간, 멈췄어야 했는데 멈추지 못했던 순간, 끝까지 버텨야 했는데 중도에 포기했던 좌절과 실패의 순간들이 달리기 위에서 하나둘 떠오른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조금씩 배운다. 힘을 빼야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 남들과 속도를 비교하지 않아야 내 리듬을 지킬 수 있다는 것. 내 체력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과도한 무리 끝에는 부상이 기다리듯, 인생에서도 무리한 선택은 넘어짐을 만든다.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다.
한 달 뒤, 나는 단순히 완주의 기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는 인정의 고백을 얻고 싶다.
달리기가 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을 비추는 중요한 거울임을 기억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이 풀과 나무, 바위와 물, 하늘과 꽃이 어우러질 때 드러나듯, 달리기 역시 단순히 빠르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패와 성공이공존하는 인생의 결이 오롯이 달리기 위에 녹아든다.
나는 달린다. 건방 떨지 않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천천히, 그리고 멀리.
달리기가 내 삶을 닮았고, 삶이 달리기를 닮아 있음을 받아들이며, 오늘도 길 위에 다리는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