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달리기
어느덧 몸을 녹여 내리던 여름의 기세가 조금씩 물러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스미는 바람은 선선해졌고, 달리기 위해 밖으로 나서면 공기의 온도가 달라졌음을 금세 느낄 수 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을 눌러오던 습기와 뜨거움이 사라지고, 답답함 대신 시원함이 남는다. 러너들에게 가을은 ‘기록의 계절’이라 불린다. 여름 내내 흘린 땀이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듯 보답을 주기 때문이다. 꾸준히 달린 몸은 가을바람을 만나 물 만난 고기처럼 반응한다. 여름을 어떻게 보냈든, 가을만큼은 오래도록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것이 러너들의 마음일 것이다.
나 또한 경주 마라톤을 준비하며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훈련은 마음에 차지 않았다. 달리기를 포기하거나 건너뛴 것은 아니지만, 후련하지 않았다. 원인은 오래 찾을 것도 없었다. 내 몸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한 탓이었다. 목표를 현실에 맞게 세우지 않았고, 내 몸 상태를 과하게 평가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며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결국 훈련은 자꾸만 벅차게 다가왔고,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생각해 보면 기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러너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진짜 기록처럼 붙든다. 누군가 5km나 10km 기록을 묻는다면, 대부분은 지금의 기록이 아니라 과거 최고의 기록을 답한다. 그것이 몇 해 전 기록일지라도 마치 현재인 듯 붙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러했다. 최근 몸 상태는 무시한 채, 예전의 기록을 기준 삼아 훈련 계획을 세웠다. 결과는 자명했다. 훈련은 버거웠고, 결국 나는 버티는 데 급급했다. 오버 트레이닝의 신호였다.
몸은 정직하다.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기록을 갖고 있어도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면, 그 기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억지로 오기로 버티려 해도 오기란 결국 기본 체력과 실력이 받쳐줄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지난주 나의 훈련은 의지로 버티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다시 조정했다. 훈련 스케줄을 하향했다. 인터벌의 거리도 줄이고, 템포런의 페이스도 낮추고, LSD의 거리마저 줄였다. 타협이 아닌 교만을 잘라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조금씩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결국 필요한 건 겸손이었다.
돌이켜보면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의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하면, 과거의 기록과 경험은 오히려 짐이 된다. 내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자격증을 가졌는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는 한때의 기록일 뿐이다. 그것에 안주하면 꼰대가 되거나, 과거의 영광만 되풀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정작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발전은 없고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쉽고도 즐겁지만,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는 일은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과정을 피해 간다면 성장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달리기는 그런 점에서 가혹하다. 그러나 동시에 정직하다. 내가 뛴 거리만큼의 체력과 건강을 허락하고, 그에 대한 보너스로 기록을 준다. 요행은 없다. 우연도 없다. 땀 흘린 시간과 한 걸음 한 걸음의 축적만이 결과로 남는다. 뛰지 않았다면 호흡은 무겁고 심박은 치솟을 것이고, 꾸준히 달렸다면 호흡은 가벼워지고 발걸음은 길게 뻗어 나간다.
지난 한 주간의 훈련을 통해 나는 다시 깨달았다. 몸은 속일 수 없고, 내 몸 앞에서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훈련의 강도를 낮추고,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려 한다. 정직하게 차오른 몸과 기록을 맞이하기 위해. 기록의 계절, 가을은 그렇게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