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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 Oct 28. 2019

사랑 고백 후의 일상

사랑이라는 판타지로부터 벗어날 때

1. 내일은 결코 내 시간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뿐이니,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 하루를 끝마치며 웃으며 잠들 수 있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2. 결과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정이기에,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 초연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근래의 삶을 지탱해주는 2개의 가치다. 성경, 조던 피터슨, 그리고 다양한 책과 motivational video들에서 영감을 받아 내린 나의 인생 지침문이다. 


 어제는 여자친구와 정말 오랜만에 낮부터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각자의 바쁜 일상 가운데에 낮에 서로에게 허용되는 시간은 많아야 한달에 한두번 뿐이더라. 그래서 더 많이 눈마주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더라. 적게보면, 적게 보는대로 서로의 사랑이 깊어질 수 있더라.

 헤어진 후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하고 집에 늦게 돌아와, 하루의 기쁨과 행복을 조금이나마 남겨두고 싶어 조금은 긴 편지를 그녀가 자는 사이 보내두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미리 일어난 그에게 답장이 와있었다. 그 글을 읽는 내내 날아갈 듯이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 하루를 마치고 다시 책상 앞에 돌아와 오랜만에 브런치를 다시 켠 이유는, 하늘을 날듯한 기쁨의 뒤에도 내 인생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말을 조금 더 풀어 설명하면, 전날 나누었던 따듯한 대화와 글들은 내게 정말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지만, 매일 하루 끝에 책상 앞에서, 침대 위에서 마주하는 나는 어제와 동일한 내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부끄러운 습관이 남아 있으며,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나의 모습은 잠시 기쁨 앞에 힘을 잃었을 뿐, 내 안에 아직도 잠재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랑의 판타지는, 세상 어딘가에 있는 나와 꼭 맞는 그녀를 만나면 그녀를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인생이 변화하며, 무수한 긍정적인 영향을 그로부터 받아 매일 같이 웃음을 머금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500일의 썸머"의 남자 주인공이 그녀와의 만남 뒤에 춤추고 노래하며 출근하는 삶이 일상이 될 것이란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딴 판타지는 영화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임을 다시 직시하자.


 세상 어딘가에 기다리고 있을 나의 운명적인 상대가 있고, 그를 만나면 내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란 환상까지는 양보하자. 하지만 그를 만난다해서 내 인생이 마법과도 같이 변할 것이라는 판타지는 빠르게 벗어 던지자. 설사 완벽한 상대일지라도, 이 희망은 나 스스로와 상대를 갉아먹는 좀과도 같은 존재이니 부디, 생각을 바꾸자.

 이 판타지의 가장 큰 모순은 "관계하고 있는 나"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한, 나는 어제와 동일한 사람이다. 어제의 두려움과 고통을 앉고 있고, 어제의 나약함과 약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내 경험상 타인이 결코 고치거나, 없에거나, 더 좋게 할 수 없다. 잠시 잊게 해주거나 내가 그것을 개선해 나가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나를 고쳐내지는 못한다.

 어제의 모순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나는, 완벽한 그와 함께 할때에도 지금의 모순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관계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며, 가장 많이 노력하는 것은 사랑의 너무나도 섬세하여 깨지기 쉬운 그 특성이다. 내가 배우고 경험했던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하여 가장 최고의 것을 그에게 주고, 그 또한 마찬가지로 한다고 해도 어느새 식어버리고, 삐걱거리고 있는 사랑이란 관게의 특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지금의 로맨스를 무한히 연장시킬 방법을 고민하고, 계속해서 실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저 판타지에 몸을 맞기면, 아무리 완벽하던 관계라도 삐걱대기 시작하며, 그 삐걱거림은 서로에게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판타지는, 오로지 내가 끊임없이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위해 매일 같이 노력할 때에 이뤄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전형적인 일기가 되었다. 용두사미... 거창한 주제를 말하려 했으나 결국에는 정돈되지 않은 생각을 적어 내려간 내 전형적인 일기. 

 나는 오늘도 relapse에 대한 유혹을 느끼며 이 자리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이 감정에 자기 증오를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도 섞고 싶지 않아 relapse 없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도, 어제도 오후가 다되어서야 침대에서 나올 수 있었고, 계속해서 담배도 피고, 방은 혼돈의 도가니이다. 운동도 하고 있지 않고, 체력은 계속해서 부족하다.

 무수한 약점이 있고, 고쳐지지 않는 악습, 만들지 못하는 좋은 습관들 투성이의 내가 지금 여기 앉아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를 하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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