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해변가에 앉아서 찬찬히 하늘을 바라본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꿉꿉한 날에 구름 행렬 대신
커다란 회색 천막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쨍쨍한 파란빛을 뿜어내는 하늘이든
그늘진 얌전한 하늘이든
어떤 하늘이어도 좋아라. 하늘만큼이나
내 마음을 앗아가는 넓은 바다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넋을 잃어도 괜찮으니 나 자신을 그 앞에 두기로 한다.
얼마만인가. 그 앞에서 누리는 이 고독의 시간이.
파도가 역동적이게 일렁거린다.
답답했던 내 마음을 이내 휘휘 젓기 시작한다.
슬픔, 기쁨, 내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생각의 틈이 생기려고 하면 파도는
거세게 내면 깊숙이 밀려 들어온다.
수북이 쌓여 있던 시간의 쾌쾌한 잿더미를
순식간에 앗아간다. 마치 그래야만
내가 숨 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어쩌면 내 전부를 덮칠 수도 있겠어,’
내 운동화만 간신히 적셔질 만한 거리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휘감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나의 크고 작은 몸짓, 과거에 몰래
쪽지 내밀 듯 전했던 귓속말,
꿈에서 횡설수설하며 허공에 말했던 모든 고민까지
알고 답해줄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든. 그렇지 않든.
이 시간, 그와 마주하는 시간,
나는 오늘 안위함을 얻으려 한다.
“이는 곳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로마서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