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앤비 Oct 19. 2020

죽음 앞에 선 "기대"와 "기쁨"

며칠 전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난 후 정리를 하던 참에 전화가 왔다.


“작은 엄마야. 잘 지냈니? 잠깐 통화 가능해? 오늘 너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실 거 같아. 지금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께서 숨은 멎으셨는데, 잔맥이 남아 있으셔서 잔맥까지 멈추게 되면 그때 의사가 와서 사망진단서를 써주신데. 그리고 나면 아마 장례일정이 나오게 될 거 같아. 너는 내일 아침에 오면 될 거 같다.” 


전화를 끊자마자 잠시 멍해지며 내가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 분당에서 잠시나마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간들과 이민 생활을 하며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찾아뵈었던 할머니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의사가 지금 오고 있어. 와서 사망진단서 써주신데. 내일 OO병원에서 보자.” 


한국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처음이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미국에 계신 부모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앞으로 며칠간 막중한 임무가 주어지게 된 것을 직감하였다. 다음 날부터 진행된 3일간의 장례 기간 동안 수많은 생각과 만감이 교차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선 솔직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둘째 날이었다. 입관예배를 마치고 입관식을 위해 발인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안치실로 직계가족 15여 명이 차례로 줄을 지어 들어갔다. 할머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장례식에 참여할 때는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인 앞에서 잠시 묵도하는 시간을 주기에, 시신을 보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가족 모두가 안에 들어왔을 때, 장의사가 고인의 얼굴에 덮여있던 멱모를 들춰내자 미소를 지그시 머금고 계신 할머니의 온화한 얼굴이 드러났다. 누군가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눈을 감는다. 흐느끼는 자를 옆에서 토닥이고, 사촌들은 더 깊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꼭 잡는다.  또 다른 누군가의 입에서는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로 익숙한 노래를 부른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어느샌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절제된 목소리로 함께 찬양을 부른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고인의 얼굴을 면전에서 꽤 오랫동안 바라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죽음을 눈 앞에서 바라보고 있었으며. 슬픔과 애도, 위로와 격려의 공기가 안치실의 싸늘함과 함께 섞여 나의 오감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깨우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도 현실이요, 그녀 앞에서 흐르는 나의 눈물도 현실이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되고 간절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20여 분간 진행된 입관식은 죽음과 부활의 삶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경험케 하였다. 


믿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육체의 죽음보다 더 결정적인 죽음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 하나님과의 단절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의 품 안에서 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부활이 믿는 자의 것이 되듯, 할머니의 죽음도 이미 부활하신 예수의 품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섭리임을 기억하게 되었을 때, 나의 입술에도 비로소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할머니의 91년 인생을 생각하면 룻이 생각난다. 룻이라는 한 연약한 여인을 통해 훗날 다윗이 태어나고 예수님의 족보가 이루어진 것처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가족 족보에 기록된 할머니의 이름과 그의 미소가 나의 슬픔을 감사케 하고, 죽음 앞에서 “기대”와 “기쁨”을 묵상케 한다.  


할머니,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어요. 

할머니, 많이 고맙고 사랑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